[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김현미 장관의 ‘두더지 잡기식’ 부동산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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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기 위해 온수를 틀었습니다. 너무 뜨거운 물이 쏟아지자 황급히 냉수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립니다. 갑자기 찬물이 나오자 다시 온수 쪽으로 돌리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제대로 샤워를 하지 못한 바보가 있습니다.

‘샤워실의 바보’는 시장에 개입해 실패를 거듭하는 정부를 뜻합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이론입니다. 프리드먼은 경기 등락을 물 온도에, 정부 정책을 수도꼭지 돌리는 행위에 빗댄 겁니다. 정부가 시장에 섣불리 개입하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시끄럽습니다.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만 22번째 발표됐습니다. 약효가 먹히지 않자 땜질식 처방을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튀어나오면 망치로 내려치는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정부는 비규제 지역의 집값이 오르자 6·17대책을 통해 수도권의 거의 모든 지역을 투기 과열지구나 조정지구로 묶었습니다. 그러자 서울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등 기존 투기과열지구의 집값이 더욱 뛰고 있습니다.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였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이 정책이 먹히지 않자 7·10대책을 내놨습니다. 이번에는 취득세, 보유세, 양도소득세를 모두 올린 겁니다. 실거주 1채 외에는 사지도 말고, 보유하지도 말고, 팔지도 말라는 신호를 준 셈입니다. 세수 증대를 위한 정책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야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의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18일 서울 종로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시민 500여 명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임차인만 국민이냐, 임대인도 국민이다”, “임대사업자와 다주택자를 정부가 범죄자로 만들었다”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조세 저항 담론이 들끓고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시민들이 부동산 정책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16일 밤 진행된 MBC ‘생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토론 직후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크가 꺼진 것으로 착각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토론 내내 “이제는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진 의원이 토론이 끝나자마자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진 의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증폭됐습니다. 야당은 “여당 핵심부가 정책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쇼를 해 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정책은 ‘사기’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습니다.

주택 가격에는 수요 공급과 시중 유동성, 교육 교통 생활 인프라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합니다. 조세 부담도 수요 공급에 영향을 미칩니다. 세금이 늘면 주택 공급이 줄고 그만큼 주택 가격과 전·월세가 오르고 조세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됩니다. 경제 원론에 나오는 ‘조세 부담의 귀착’ 원리입니다.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몰려 인기 지역의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양극화 해소를 내건 정부가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큽니다.

섣부른 정책 남발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했습니다. 프리드먼이 이 상황을 본다면 ‘샤워실의 바보’가 따로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김현미#부동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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