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서 기사회생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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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 강제 경매 일주일 앞두고 긴급 이사회서 담보대출 결정
정부R&D 과제 수주 못해 경영난, 원장 재선임 등 현안 많아 가시밭길

대구지방법원이 29일 강제 경매를 결정한 동구 봉무동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 이사회가 건물 담보 대출을 결정해 경매 위기를 넘겼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대구지방법원이 29일 강제 경매를 결정한 동구 봉무동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건물. 이사회가 건물 담보 대출을 결정해 경매 위기를 넘겼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올해 설립 10년을 맞은 한국패션산업연구원(대구 동구)이 관련 기업들에 지원을 제공하기는커녕 내부의 계속된 위기로 휘청이고 있다. 본원 강제 경매를 일주일 앞두고 대출을 받기로 하면서 기사회생하는가 하면, 경영난 때문에 직원들에게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돌파구를 찾고 미래를 구상해야 할 원장은 장기간 공석이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20일 오전 11시 이사회를 열고 ‘경영난 해소를 위한 건물 담보 대출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연구원은 2017년 업무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 A 씨 유족에게 위로금 1억여 원을 지급하지 못했다. 유족은 지난해 7월 대구지방법원에 건물 가압류 신청을 냈고 위로금 지급이 미뤄지면서 강제 경매 결정이 내려졌다.

연구원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내부의 건물 담보 대출이 불가하다는 결정을 잇달아 내렸다. 결국 법원이 이달 29일 건물 강제 경매를 결정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 연구원 건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까지 돌자 이사회는 경매를 일주일 앞둔 20일 긴급 소집됐다.

이날 이사 13명 가운데 8명이 참석해 대출 결정을 위한 투표를 실시한 가운데 찬성 4표, 반대 4표가 나왔다. ‘정관상 가부 동수이면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법률 해석에 따라 의장을 맡은 이사장이 가결 결정을 내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향후 설립 주체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 건물을 담보로 약 3억∼4억 원의 대출을 받은 뒤 유족 위로금과 경영난으로 밀린 세금 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섬유 패션 기업을 돕기 위해 설립된 연구원이 오히려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경영난은 심각하다. 핵심 동력인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년째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적자를 낸 연구원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적자 폭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의 임금은 4년간 동결했고 수당과 4대 보험료, 퇴직연금 등은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원을 이끌어야 할 원장은 1년 3개월째 공석이다. 더구나 원장이 낙마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8년과 지난해 원장 2명이 각 1년 안팎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해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말에는 새 원장 공모 과정에서 섬유 패션 관련 경험이 없는 육군 장군 출신에게 최고점을 줬다가 업계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부는 최근 새 원장 취임을 승인했지만 당사자는 계속 출근을 미루다가 이달 6일 연구원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결국 원장을 재공모해야 할 형편이다.

박재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기획경영실장(원장 대행)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난관이었던 경매 문제를 해결한 만큼 섬유기업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언택트(비대면) 지원 사업과 방화복 및 마스크 생산 시스템 구축 등 그동안 추진하지 못했던 사업들이 구체적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 동구#한국패션산업연구원#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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