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소식 접하면 미안해 말고 오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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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입양 36년 만에 DNA로 생부 찾은 딸
비영리단체 도움으로 친부 검색
입양아 출신 친생자 소송 첫 승소
생부의 혼외자… 곧 상봉 예정

36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강미숙(미국명 카라 보스) 씨가 12일 친부를 상대로 낸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36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강미숙(미국명 카라 보스) 씨가 12일 친부를 상대로 낸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뒤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는 12일 강미숙(미국명 카라 보스·39세 추정) 씨가 친부 A 씨(85)를 상대로 낸 친생자 관계 인지 청구 소송 선고 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선고 결과를 들은 강 씨는 방청석에서 잠시 환한 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감정이 복받친 듯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흐느끼듯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36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강 씨는 친부(親父)를 상대로 “친자가 맞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해외 입양아 출신이 국내에 있는 친부모를 상대로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건 처음이다.

강 씨는 1983년 11월 충북 괴산에 있는 한 주차장에서 발견된 뒤 이듬해 9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네덜란드인과 결혼해 암스테르담에 살던 강 씨는 자신의 딸을 생각하며 친모를 찾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입양아가 커서 친부모를 찾기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지난해 강 씨는 DNA를 통해 친부모를 찾는 비영리단체 ‘325캄라(KAMRA)’를 통해서 자신이 A 씨의 혼외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유전자 검사 결과 강 씨와 A 씨는 부녀 관계일 확률이 99.9981%로 조사됐다.

결국 강 씨는 지난해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을 냈다. ‘인지’란 혼외의 출생자를 그의 생부나 생모가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는 법적 절차다. 판결이 확정되면 강 씨는 친부 A 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피인지자’로 기록될 수 있다. 강 씨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듣길 원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A 씨의 가족은 강 씨와의 접촉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강 씨는 조만간 A 씨와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강 씨는 선고 직후 처음에는 영어로 “오늘은 모든 입양아들에게 기념비적인 날”이라며 “이 모든 것은 엄마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엄마가 이 기사를 본다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스크를 벗은 채 어눌한 한국어로 천천히 “엄마, 만나고 싶어요. 저 많이 힘들었어요. 정말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냥 오세요”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친생자 관계 인지 청구 소송#승소 판결#강미숙#카라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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