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간 ‘에어커튼’이 기내감염 위험 낮춰… ‘접촉’은 조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위클리 리포트]해외 입국자 코로나 속 ‘긴장의 귀국길’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귀국한 A 씨(36). 30일 0시가 되면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 격리에서 해제된다. 2주에 걸친 자가 격리도 답답했지만 더 힘든 경험은 귀국 중 하늘에서 겪었다. 베이징발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을 밟기까지 A 씨는 마치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 기내 감염 공포… 물도 마시지 않았다
A 씨는 15일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국내선 이용자로 북적이는 터미널을 보자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출국검역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건물에 들어갈 때 열화상카메라 모니터링이 전부였다. 공항 직원이 입구에 서 있으라고 한 뒤 카메라를 비춰 체크하는 방식이다. 대기할 때나 비행기 탑승 때도 별도의 발열 체크는 없었다. A 씨는 편하다는 생각보다 허술한 검역 탓에 무증상 감염자가 옆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베이징발 인천행 여객기는 하루 한 대. 이날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예상대로 거리 두기는 불가능한 상황. 그 대신 승무원들은 전원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착용했다. 승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오전 8시 30분에 비행기가 이륙했다.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했지만 A 씨는 팽팽한 긴장감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옆 좌석 중국인 탑승객이 질문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평소에는 옆 사람에게 펜을 빌려 입국서류를 작성했지만 이날은 귀찮아도 가방에서 직접 펜을 꺼냈다. 2시간 동안 기내식은 없었다. 탑승 전 300mL 생수 1병만 제공됐다. 목이 탔지만 A 씨는 생수병 뚜껑을 열지도 않았다.

“기내 감염이 우려돼 내부 좌석 모니터도 켜지 않았어요. 생수병은 건드리지도 않았고요. 화장실을 안 가려고….”
○ 공기보다 접촉이 위험하다
29일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590만 명. 그러나 현재까지 비행 중인 항공기 내에서 탑승객이나 승무원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된 사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국내외에서 의심 사례가 있었으나 모두 비행 전 감염으로 결론 내려졌다. 올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온 비행기 승무원이 국내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추가 감염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각국의 봉쇄로 비행기 이동 수요가 줄어든 탓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행기 구조의 영향이 크다. 비행기 내 공기 순환 장치가 비말(침방울) 확산에 따른 감염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운항 중 엔진을 통해 새로운 공기를 공급받는다. 영하 50도 안팎의 차가운 공기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살균 처리된 뒤 적정 온도로 맞춰져 내부에 공급된다. 이렇게 공급된 공기 중 절반가량은 헤파필터(HEPA filter) 같은 여과장치를 거쳐 재공급된다. 헤파필터는 공기 중 바이러스를 100% 가까이 여과한다. 주로 공기청정기에 쓰이고 마스크 필터로도 사용된다. 기내에 있던 공기 중 나머지 절반은 외부로 배출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거의 2, 3분 간격으로 빠르게 기내 환기가 이뤄진다. 방역당국이 시설 내 방역수칙 중 첫손가락에 꼽는 것이 바로 ‘환기’. 비행기는 이 수칙을 가장 충실히 지키는 밀폐 공간인 셈이다.

기내 송풍 방식도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흔히 좌석 위 송풍구를 에어컨으로만 생각한다.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깨끗한 공기를 내보내는 공조(공기 조절) 기능이 더 중요하다. 머리 위 송풍구에서 나온 바람이 아래로 향하는 구조다. 마치 바람이 앞뒤 좌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에어커튼’을 만드는 형식이다. 적어도 바이러스 확산 측면에서 볼 때 기내 공기가 수평으로 흐르는 것보다 안전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내 좌석의 송풍구를 열어 놓으라고 권고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한 홍역이나 결핵도 기내에서는 전파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공기 중 전파 가능성이 낮다고 기내에서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마스크 없이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 중 언제든지 감염될 수 있다.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자제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위해 손가락을 접촉하는 모니터를 비롯해 헤드폰과 팔걸이, 그리고 화장실 손잡이 등도 충분히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항공사마다 접촉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 기내식이나 잡지 제공을 중단한 곳도 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승객 사이의 접촉으로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장실을 같이 쓰고 좌석 손잡이를 잡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스 때 기내 감염… 방심은 금물
드물지만 기내에서 호흡기 질환이 전파된 경우가 있다. 바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때다. 2003년 12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지’에 실린 ‘사스의 기내 감염’ 논문에 따르면 그해 3월 15일 120명이 탑승한 홍콩발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총 22명의 사스 감염자가 나왔다. 이들은 72세 남성으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남성은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입원한 뒤 비정형 폐렴 진단을 받고 3월 20일 사망했다.

당시 이 비행기는 3-3 배열로 좌석은 88%가 채워졌다. 감염 위험은 확진자와의 근접성과 연관이 있었다. 이 확진자와 같은 줄 혹은 앞줄 3열 이내 앉았던 승객 23명 중 8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승객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는 조사되지 않았다. 이 논문은 “확진자와 같은 열이나 앞줄에 있는 사람들의 감염 위험이 확진자보다 뒤에 앉은 사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7일 0시부터 모든 국제·국내선 탑승객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미 일부 항공사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체 검역도 진행 중이다. 모든 노선의 탑승 게이트에선 37.5도 이상 고열이 나면 탑승이 거부된다. 기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행 장거리 노선 승무원들은 필수적으로 방호복을 입도록 했다. 감염이 의심되는 승객은 마스크와 보호구를 쓰도록 하고 있다. 의심 증상자는 다른 승객들과 최대한 분리된 공간으로 옮기고 가급적 전용 화장실을 쓰도록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국내선을 중심으로 각국의 항공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자 세계 양대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과 에어버스는 기내 감염 예방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기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공조 장치 개선, 화장실 등 공용 공간 내 비접촉 장치 확대 등을 위해서다.
○인천공항에서도 확진자 ‘0’
지금까지 인천국제공항 근무자 7만7000여 명 중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도 눈길을 끈다. 김상희 국립인천공항검역소장은 “매일 소독을 수시로 하면서 승객들을 유증상자와 무증상자로 분류해 동선이 섞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유증상자를 만나는 검역관들은 마스크, 장갑, 가운을 반드시 착용하고 페이스실드까지 착용한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인천공항의 방역 노하우를 알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콜롬비아 정부는 인천공항에 자문을 요청했다. 국경 봉쇄로 사실상 운항이 중지된 콜롬비아 보고타의 엘도라도 국제공항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이 나라 대통령실 국가안보보좌관 등 정부 당국자 70여 명이 인천공항 관계자와 화상회의를 가졌다.

지난달 중순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국내로 입국한 B 씨(37·여)는 “히스로 공항 직원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발열 체크도 하지 않았고 손소독제도 없었다”며 “인천공항에선 직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승객들을 일일이 안내하는 모습이 낯설고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소정·변종국 기자
#코로나19#코로나 바이러스#기내 감염#에어커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