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범죄 포착땐 즉시 공수처에 통보’ 규정 신설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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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수정안 ‘제왕적 권한’ 우려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중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했다면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추가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에선 “수사기관 간 중복을 피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과도한 검찰권을 견제·분산하자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공수처가 정작 ‘제왕적 기관’으로 출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회의록 안 남긴 채 공수처에 우월적 권한 부여”

23일 여야 4+1이 합의한 공수처법 수정안 중 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2항에는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과정서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가 중복될 때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청할 경우 다른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1항은 ‘따라야 한다’로 수정됐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공수처의 우월적 지위를 분명히 하면서 사건의 이송 의무를 더 명확히 한 것이다. 모두 올 4월 여야 4당이 합의안 패스트트랙 원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공수처 소속 검사의 인사를 심의하는 ‘인사위원회 위원’ 구성 권한도 공수처장과 국회 비교섭단체의 입김이 짙어졌다. 수정안엔 공수처장의 위촉권을 명시했다.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된 적이 없는 교섭단체들도 인사위원 2명을 추천할 수 있게 했다. 반면에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은 인사위원회 위원에서 배제됐다.

공수처 소속 검사의 자격 요건도 대폭 완화됐다. 수정안은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한 사람 중 ‘공수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 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사람도 자격이 있도록 했다. 이는 여야 합의로 설치됐던 각종 특조위 경험도 자격 요건으로 인정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기류다.

○ “‘살아있는 권력’ 수사 불가능한 구조”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조항은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즉시 통보할 의무를 부여한 대목이다. 현행법상 검경의 압수수색 역시 ‘인지’를 한 뒤 인지 번호가 있어야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만큼 “모든 주요 사건을 공수처에 보고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압수수색 집행 등 각종 수사 보고는 현 정부 출범 후 법무부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권한이다. 법조계에선 “회의록 하나 없이 절대 권력이 창설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정안이 통과되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장이 사실상 전권을 갖게 된다. 당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 혐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범죄 혐의, 청와대의 선거 개입 혐의가 발견되더라도 공수처에 즉각 보고하고, 공수처장의 선택이 기존 수사기관의 계속 수사에 영향을 미친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권 세력이 입맛에 맞는 공수처장 임명을 끝내 관철할 경우엔 자신들을 향한 수사로 연결되는 구조 자체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대통령, 대통령비서실 공무원은 공수처 사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3조)이 신설됐지만 운영 과정에서 충분히 유명무실할 수 있다.

공수처의 ‘제왕적’ 권한은 검찰의 독점적 직접 수사권에 비해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에 약한 검찰의 병폐를 개선하고, 기관 간 견제와 감시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공수처 설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법무부 검찰국↔대검찰청’으로 이어지던 수사 보고와 지휘 과정을 비판하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공수처 하나로 전체 사정 기관에 대한 ‘그립’을 극대화하는 구조가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진 shine@donga.com·장관석 기자
#공수처법#수정안#여야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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