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시인 이대우의 특별한 버킷리스트 “‘제네트 김’ 누님 사는 미국 가고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9일 21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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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가누기 어려워 대부분 누워 지내는 이대우 씨가 만나고 싶다는 ‘제네트 김’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제네트 김은 사진 속 가운데 줄 오른쪽 여성이다. 이대우 씨 측 제공
몸을 가누기 어려워 대부분 누워 지내는 이대우 씨가 만나고 싶다는 ‘제네트 김’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제네트 김은 사진 속 가운데 줄 오른쪽 여성이다. 이대우 씨 측 제공
“제 버킷리스트 1번은 저에게 늘 용기를 주시다 연락이 끊긴 봉사자 누님이 사는 미국에 가는 겁니다.”

왼손 검지만으로 자판을 눌러 5번째 시집을 펴낸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이대우 씨(62)의 꿈이다. 그는 다음 달 1일 오후 3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다가말 2길 IB웨딩에서 시집 ‘아침’ 출판기념회 겸 북콘서트를 연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말을 하지도, 앉거나 서지도 못한 이 씨는 서른 살 즈음 집에 더 이상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복지시설에 들어갔다가 2000년 초 천안에 정착했다. 형님과 조카가 마련해준 작은 아파트에서 기초수급생활자로 산다. 학교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던 그는 어린 시절 집에 놀러오는 동생 친구의 명찰을 보고 한글을 깨우쳤다. 마흔이 된 해인 1997년 첫 시집 ‘나의 웃음 이야기’를 펴냈다. 틈틈이 시를 써 시집을 내던 이 씨는 자오 나눔 선교회와 수레바퀴 문화진흥회 문학상을 받았고 2012년 시 전문지 ‘한울문학’으로 등단했다.

북콘서트를 주선한 박상돈 후원회장은 29일 “이 씨의 시는 아픈 기억조차 긍정으로 승화해 주변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이 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 씨가 19세 때 그의 어머니는 “밥 먹고 똥 안 싸도 되는 약”이라며 메밀묵에 수면제를 넣어 이 씨에게 먹였다. 이 씨가 잠이 들 찰나 어머니와 누나가 나누는 얘기에서 진실을 알고는 괴성을 지르며 깨어났다.

이 씨는 “중풍을 약간 앓았던 어머니는 내가 평생 형제들에게 부담을 주고 결국 홀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며 “당시 괴성은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놔두라’는 의미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시 ‘어머니’는 생전에 쌀밥을 마음껏 먹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배고프시던 어머니가 생각나 /원 없이 먹는 하얀 쌀밥이/ 수많은 모래 같은 눈물로 핀다.’

이 씨는 박 회장의 도움으로 최근 산 정상에 서 보는 버킷리스트의 꿈은 이뤘다. 이제는 미국 여행이라는 최대의 소망이 남았다. “기사가 나온다면 그리운 사람의 이름 하나 넣어줄 수 있느냐”고 묻던 그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다. 이 씨는 “‘제네트 김’이라고 부르던 미국 살던 누님이 내가 머물던 장애인시설에 봉사하러 자주 찾아와 시집을 사주고 후원금도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곤 했다”며 “2002년 이후 어쩐 일인지 연락이 끊긴 그 누님을 찾아뵙고 시인으로 성장하게 해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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