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아버지 부시’와 고르바초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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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 년간 미국과 소련 두 진영을 중심으로 이념 대립이 이어졌습니다. 총포에서 불을 뿜는 대신 이념이 다른 적대국 간에 팽팽한 긴장이 유지되는 국제 정세를 냉전체제라 합니다. 냉전체제를 완전히 끝내기 위해 지중해의 몰타 해역 유람선 위에서 미국과 소련의 두 정상이 마주 앉았습니다. 1989년 12월 2일의 일입니다. 이 회담을 계기로 지긋지긋한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국제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몰타 회담은 이념을 중시하는 외교로부터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로의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몰타 회담의 주인공이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부시(1924∼2018)와 소련의 전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87)입니다. 두 주인공 중 부시가 먼저 지난달 30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떴습니다. 5일 그의 장례식이 열립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했고 부시의 장례는 미국 국장으로 거행됩니다.

부시가 제41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가 1989년 1월입니다. 취임 첫해부터 세계사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듭니다. 부시는 1989년 7월 동유럽을 방문해 ‘자유롭고 하나가 된 유럽’을 호소했습니다. 불과 4개월 뒤인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서독의 분단은 막을 내립니다. 그해 12월 2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미소 정상이 몰타섬 선상에서 만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그려낸 것입니다.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담판으로 인류는 핵 공포의 냉전으로부터 벗어나 평화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독일 통일에 이어 체코, 유고,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와 탈공산화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부시에게 냉전 종식, 동서 화합과 같은 평화의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전쟁을 일으켜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집권 초인 1989년 12월 남미 파나마를 침공해 노리에가 정권을 축출했고 1992년에는 걸프전을 감행했습니다. 걸프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맞서 다국적군과 함께 이라크를 공격하여 궤멸시킨 전쟁으로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가 총동원된 전쟁입니다. CNN 등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전쟁 장면이 중계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제43대 대통령인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 역시 재임 기간(2001∼200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제2의 걸프전) 등을 하는 바람에 한때 ‘조지고 부시고(부수고의 잘못된 표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부시 부자의 이미지는 전쟁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버지 조지 부시는 이데올로기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로 평가됩니다. 부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을 줄곧 지지했습니다. 집권 후반기인 1991년에 소련마저 붕괴되자 부시는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전략 핵무기 감축 협상을 체결하는 등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시기에 함께 일했다. 이는 모두에게 큰 책임감을 요구한 드라마틱한 시기였다”면서 “그 결과 냉전과 핵 경쟁이 끝났다. 이런 역사적 성취에 대한 부시의 기여를 합당하게 평가하고 싶다”고 회고했습니다.

미국 뉴욕 유엔 본부 앞마당에는 포신이 엿가락처럼 꼬인 대포 조형물이 놓여 있습니다. 냉전을 해체한 역사의 진보 앞에 숙연해지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우리의 현실 때문이겠지요. 다가오는 새해에는 마지막 남은 냉전 지역 한반도에도 평화의 빛이 깃들기를 바라 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 교사
#아버지 부시#고르바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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