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찾은 아버지 뼛조각…이제 죽어도 여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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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22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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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 찾은 유족 양인순씨
“지난해 100세 일기로 눈 감은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

22일 제주4·3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4·3 희생자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 News1
22일 제주4·3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4·3 희생자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 News1
“아버지… 우리 아버지…”

22일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을 찾은 양인순씨(75·여·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는 아버지 고(故) 양재추씨의 유해함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끝없이 오열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견된 아버지의 유해가 작은 뼛조각 하나 뿐이었던 데다 서울에서 유전자 감식을 끝낸 유해가 시간관계상 미처 제주로 옮겨지지 못하면서 이날 결국 텅 빈 유해함을 안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위로에도 그의 울음소리는 한동안 봉안관을 떠날 줄 몰랐다.

양씨의 아버지는 해안마을로 이주하라는 소개령(疏開令)에 따라 이동하던 중 토벌대에 연행돼 1950년 7월 이후 행방불명됐다.

당시 양씨는 7살에 불과했다.

그는 “밥을 잘 안 먹는 동생에게 설탕 버무린 밥을 떠먹여 주던 마음 여린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며 “(내가) 너무 늙어버린 탓에 얼마 없는 기억 마저 흐려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애통할 뿐”이라고 가슴을 쳤다.

그렇게 양씨를 비롯한 다섯 자매는 어머니 고 안시생씨의 품에서 오랜 풍파의 세월을 이겨내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양씨의 어머니는 평생 남편을 기다리다 지난해 12월 100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양씨는 “평생 수절해 한 남편의 아내로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아 오셨는데, 70년 만에 돌아온 남편을 어루만지지도 못하고 하늘로 가셨다”며 거듭 눈물을 훔쳤다.

양씨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작은 뼛조각 정도지만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모든 한이 풀렸다”며 “한 달 뒤 어머니 1주기인데,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쁘다”고 전했다.

양씨는 다만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들도 많다”며 “희생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이날 제주4·3평화공원 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4·3 희생자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 22명, 1950년 삼면예비검속 희생자 6명, 기타 1명 등 29명으로, 모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과 동북쪽에서 발굴된 유해다.

이에 따라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에 안치된 유해함은 121위으로 늘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날 추도사를 통해 “신원 확인에 더욱 속도를 내고, 비교군 확보를 위해 유족 채혈도 지속 추진하겠다”며 “무고하게 희생당하신 최후의 유해까지 찾아내 가족 품에 안겨드리겠다”고 전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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