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손흥민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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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탄성이 교차한 24일 새벽, 2018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2―1로 패한 후 손흥민(사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멋진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패한 것에 대해 공격수로서 많은 아쉬움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력에 따라 승과 패가 갈리는 스포츠에서 결과에 대한 부담을 선수가 오롯이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손흥민의 눈물은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합니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남자의 눈물은 흘리지 말아야 할 금기의 대상이기 때문일 테지요. 무언가 답답하고 힘들어 차라리 울어버리고 싶은 우리 국민들의 심정을 손흥민의 눈물이 대신한 듯합니다. 국민들의 마음도 함께 뭉클했습니다.

국가 대항전 축구에 우리는 지나친 애국주의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길거리 응원, 치맥(치킨과 맥주)과 함께하는 응원 등 즐기는 문화 이면에 국위 선양과 병역 면제라는 애국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태극기 응원이 사라진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태극기에 부정적 낙인이 찍힌 것이 안타깝습니다. 평소 축구장에 가지 않던 국민들도 월드컵에는 광적으로 몰입합니다. 그러니 선수가 실수하거나 팀이 패했을 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집니다. 선수들이 받을 압박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축구는 11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다 하더라도 조직력 속에 융화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26일 현재 당대 최고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1무 1패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를 보유한 이집트는 3패로 예선 탈락했습니다. 세계적인 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을 갖고 있는 우리 역시 전패를 우려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소속팀에서 그토록 잘하던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토트넘에서의 손흥민과 한국 대표팀에서의 손흥민은 완전히 다른 유기체의 일부분입니다. 역할과 움직임이 다르고 볼 배급이 다릅니다. 토트넘에서 30m만 전력질주하면 되지만, 대표팀에서는 50m 이상 달려야 합니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달려서 공간을 확보해도 패스를 받아줄 동료가 없습니다. 빠른 스피드로 적진 사이를 빠져 들어가고 싶어도 킬 패스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손흥민의 눈물에는 말 못할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전체는 부분의 산술적 합이 아닙니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 순간 전체는 독자적으로 실재하는 구조가 됩니다. 축구는 선수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리더십과 전략, 정신력, 체력, 조직력이 합해져서 한 팀의 전력이 나옵니다.

1996년 31전 31승으로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복싱 영웅 헨리 마스케의 은퇴 경기가 열렸습니다. 화려하게 은퇴 경기를 하고 싶었던 그의 바람과 달리 마스케는 도전자에게 패하고 맙니다. 쓸쓸히 링을 내려오는 마스케를 향해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기립하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불렀던 ‘타임 투 세이 굿바이’였습니다. 이런 감동을 빼면 스포츠는 의미 없습니다.

스포츠가 아름다운 것은 승패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 때문 아닐까요. 27일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 기적이 아닌 최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박수를 쳐줍시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손흥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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