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 ‘工期 맞추기’ 어린이집 ‘휴식시간 보장’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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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후폭풍

“정부 정책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현장이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다.”

대형 건설업체 D사의 R 팀장(54)은 다음 달부터 시행될 주 52시간 근무제 준비 상황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시뮬레이션도 해보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실제 건설 현장에서는 “앞으로 공사기간(공기)을 맞출 수 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적잖다. R 팀장은 “시멘트를 바르다가 근로시간을 넘어서면 그대로 두고 퇴근해야 하나? 그렇게 해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업체 H사의 P 팀장(46)도 비슷한 반응이다. “공사기간 내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국내 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경쟁력이다. 현지 파견 직원들이 수시로 건설 현장을 점검하면서 살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경쟁력을 잃을까 봐 두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업종별 실태를 잘 파악하지도 않고 일률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는 불만이다. 일부 업종에서는 ‘근로 단축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7월 1일부터 버스 기사의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으로 줄이고, 1년 후에는 52시간으로 줄여야 하는 노선버스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지난달 31일 노사정이 내년 6월 말까지 탄력근무제를 적용하는 데 합의했다. 주 68시간 근무 중 연장근무 12시간 제한 조항을 첫 주는 76시간, 둘째 주는 60시간 등으로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게 골자다.

발등의 불은 껐지만 1년 사이에 버스 기사 확보와 재정 확충 등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기사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의 영세 버스업체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버스 기사 K 씨(51)는 “1년의 유예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충원이나 정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1년 후 버스 대란 발생이 불을 보듯 빤하다”라고 말했다.

특례업종에 속해 있다 이번에 제외된 21개 업종은 1년의 유예를 얻었지만 휴게 시간을 지켜야 하는 등 새로운 난관에 부닥쳤다. 이를테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어린이집도 앞으로는 보육교사가 8시간을 근무하면 1시간의 휴게 시간을 줘야 한다. 지금까지는 보육교사들이 8시간을 넘겨 일할 경우 초과근무 수당을 받았지만 7월부터는 그럴 수 없다.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만 3세반 담임을 맡고 있는 C 씨(26·여)는 “그동안에는 상황에 따라서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챙겨주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일을 더 하면서도 수당까지 못 받게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어린이집 운영자에게도 부담이 커졌다. 작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L 씨(54·여)는 “나처럼 영세한 민간 어린이집은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보육교사를 추가 채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운송업 4개 업종(육상, 수상, 항공, 기타)과 보건업 등 5개 업종은 특례가 유지됐다. 이들 업종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연속 휴식 시간을 11시간 보장해야 한다. 밤 12시에 퇴근하면 그 다음 날 11시까지는 근무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특례가 유지된 업종의 근로자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병원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의료의 질 하락이 발생한다며 인력 충원과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김상훈 corekim@donga.com·유성열·강승현 기자
#근로시간 단축#어린이집#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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