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위한, 실버에 의한 ‘행복한 라디오’

  • 동아일보

강남구 60세이상 ‘해피미디어단’
방송 관심있는 35명 모여 시작… 대본 집필-제작-송출 직접 담당
방송전엔 단편영화 만들어 인기… “명품 노년은 스스로 만드는거죠”

젊은이가 자기 취향에 맞는 노래가 있듯 시니어도 듣고 싶은 가요와 사연이 있다. 서울 강남구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이달 시작한 ‘보이는 라디오 방송’의 DJ 유한권 씨와 초대 손님 이주현 김순국 씨(오른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젊은이가 자기 취향에 맞는 노래가 있듯 시니어도 듣고 싶은 가요와 사연이 있다. 서울 강남구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이달 시작한 ‘보이는 라디오 방송’의 DJ 유한권 씨와 초대 손님 이주현 김순국 씨(오른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야∼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오승근의 노래죠?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오늘 수요초대석, 문을 활짝 열어드리겠습니다.”

30일 낮 12시 편안한 중저음이 마이크를 타고 서울 강남구립 강남시니어플라자 곳곳에 퍼졌다. ‘중절모를 쓴 디제이(DJ)’ 유한권 씨(80)가 초대 손님 이주현 씨(73·여)와 김순국 씨(64·여)를 소개했다. 두 사람은 요즘 배우는 한국무용과 댄스교실 에피소드, 그리고 일상생활을 이야기했다. ‘DJ 유’가 이들의 신청곡을 소개했다.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

이달 시작한 ‘보이는 라디오 방송국’의 한 장면이다. 60세 이상 모임인 ‘해피미디어단’이 방송을 이끈다. 노년층이 운동 및 교양 강좌를 들을 수 있는 복지관인 강남시니어플라자 이용자 1만여 명 가운데 방송에 관심 있는 35명이 해피미디어단에 모였다. 방송 대본 집필부터, 제작, 영상, 송출까지 이들이 한다. 이날 방송은 강남시니어플라자뿐 아니라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도 생방송됐다. 유 씨는 “목소리 좋은 후배가 들어오고 반응이 좋으면 방송 횟수도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노래 선곡에서 알 수 있듯 이 방송국은 철저히 시니어 취향에 맞춘다. 일반 라디오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60∼80대를 아우르는 유행가가 30분간 흐른다. 초대 손님 이 씨는 “방송에 나온다고 생각하니 무엇을 입을까, 어떤 이야기를 할까 설렜다”며 “집에만 있는 것보다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해피미디어단은 라디오 방송 이전에는 단편영화로 인기를 모았다. 노년 세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젊은 세대와 어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원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작품으로 만든다. 이필성 단장(73)은 “2013년 만든 단편영화 ‘징검다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자식도 뜻대로 되지 않지만 다시 용기를 얻어 앞으로 나가는 노인들 이야기를 다뤘다”고 말했다. 배우 오디션에는 30∼40명이 온다. 연기력도 보지만 ‘삶’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싶은 자세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지난해 제작한 ‘솟을 대문’은 황혼이혼 문제를 다뤘다. 장손에게 시집와 온갖 고생을 다한 여주인공의 노고를 남편은 알아주지 않는다. 고민 끝에 집을 나온 여주인공은 미용사로 나서 돈도 벌고 주변의 인정도 받는다. 어느 날 봉사활동을 하다 ‘노숙자 신세’가 된 남편을 만나는데…. 여주인공이 남편과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구식 아닐까. 그래도 시사회에서는 눈물에 젖은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멀리서 새 짝을 찾을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메시지에 공감했다는 얘기다.

이들이 방송과 영화,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명품 노인’은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멋진 노년의 삶을 다른 노년층에게 계속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해피미디어단#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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