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종시 영어유치원 5곳뿐… 없어서 못갈까 있어도 안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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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후 교육부선 학원쏠림 없다는데…

“세종시에선 없었다.”

이달 초 교육부 담당자는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풍선효과’가 생긴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세종시는 현재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유치원 영어수업이 금지된 곳이다. 과연 교육부 말이 맞을까.

세종지역 모든 유치원에서 영어수업이 사라진 건 약 3년 전이다. 세종시교육청은 2015년 7월 영어수업을 금지했다. 약 1년 뒤인 2016년 6월 유치원 학부모 35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자녀를 영어, 한글 등 언어 관련 학원에 보낸다고 답한 비율은 8.9%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마저도 한글 학원이 대다수라 영어 학원을 보낸 비율은 극소수”라고 말했다. 얼핏 수치만 보면 영어수업 금지로 인한 학원 쏠림 현상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종시의 특성을 일일이 따져보면 정부가 ‘풍선효과’가 없는 근거로 세종시를 꼽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세종시는 2014년 정부 청사 이전이 마무리된 신도시다. 시교육청이 설문조사를 한 2016년 당시 학원가는 물론이고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3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5곳으로 늘었지만 서울(161곳), 경기(110곳)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유치원 원아 1인당 영어학원 수로는 세종이 0.0009개로 서울(0.0018개)의 절반이다. 영어학원을 보내고 싶어도 마땅한 학원이 많지 않은 셈이다.

세종시 유치원의 대다수가 공립 유치원인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 유치원과의 경쟁을 위해 사립 유치원은 영어수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이 때문에 영어수업 금지 방침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종시 유치원 53곳 중 사립은 3곳뿐이다. 정부의 영어수업 금지 방침이 별다른 저항 없이 안착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전국 유치원 2곳 중 1곳(47.4%)이 사립이며 특히 서울은 76.3%에 이른다.

중앙부처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시의 특수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해외 연수 및 근무 기회가 많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자녀들이 유치원 영어수업이 없어도 사교육에 의존할 필요가 덜한 편이다. 최근 1년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초등생 자녀를 데리고 귀국한 중앙부처 공무원 A 씨는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영어로 책을 읽을 수 있고 회화도 유창하다”고 말했다.

또 유치원 영어수업이 금지되면서 학원에 보내진 않더라도 영어 학습지를 풀게 하거나 부모가 직접 영어를 가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한 전업주부인 고호정 씨(36·여)는 5세 딸에게 영어학습지를 풀게 하며 영어교육 관련 동영상을 보여준다. 고 씨는 “예전 어린이집과 달리 지금 다니는 유치원에선 영어수업이 없어 아이가 조금이라도 일찍 영어에 노출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라도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올해는 영어학원에 보낼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세종시#영어수업#유치원#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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