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나타난 전주 ‘얼굴 없는 천사’…8년 동안 5억 6000여만원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16시 42분


“주민센터 뒤편에 (돼지저금통) 나뒀습니다.”

28일 오전 11시26분 전북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40, 50대 남성은 이렇게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나가보니 A4 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다.

박스에는 각종 동전 1235개가 든 돼지저금통과 5만 원 권 1200매, 그리고 쪽지가 들어있었다. 총액은 6027만 원이었다. 쪽지에는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 보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아질 꺼(거)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희망의 빛을 전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18년째 노송동 주민센터에 19차례 기부했다. 기부금액은 5억5813만 원.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려 매번 짧은 전화 한 통만 남긴다. 항상 소년소녀가장을 챙겨달라고 당부한다.

노송동 주택은 198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이 70%에 이르고 주민 1만1954명 가운데 25%가 노인이다. 그만큼 조손(祖孫)가정이 많다. 주민센터는 그의 뜻을 헤아려 소년소녀가장이나 조손가정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려하고 있다.

노송동 주민들은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소외계층을 돕는 등 다양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얼굴 없는 천사의 후원은 시 전체로 익명 기부자가 늘어나게 하는 행복바이러스다”라고 말했다.

전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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