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안중근의사 유족에게 집 꼭 기부하고 싶습니다”…아름다운 줄다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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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 어렵다는 본보 칼럼 읽고 연락
유족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업가 “집 꼭 기부하고 싶습니다”

올 8월 말, 60대의 한 남성이 동아일보에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을 “동아일보의 오랜 독자”라고 밝힌 이 남성은 본보에 게재된 칼럼(8월 19일자 26면 ‘안중근家의 두 아픔’)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 도울 방법을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쓴 이 글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유족(안 의사의 둘째 동생인 안정근 선생의 며느리와 두 딸)들이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허름한 임대아파트를 10여 차례 옮겨 다니며 힘겹게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광주에서 중견 건설업체를 경영하는 박철홍 골드클래스 회장(63·사진). 그는 본보에 “유족들에게 집 한 채를 드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족들이 번듯한 거처도 없이 살고 있다는 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본보는 이 같은 사실을 안 의사 유족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져온 이 교수에게 전했고, 이를 들은 이 교수는 “박 회장의 아름다운 뜻이 꼭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8월 19일자 26면 동아광장 칼럼.
8월 19일자 26면 동아광장 칼럼.
▼ 유족이 끝내 고사하자 “독립운동가 후손 위해”… 연세대에 1억원 쾌척 ▼


하지만 난관은 따로 있었다. 유족들이 고인의 올곧은 자세를 이어가고 싶어 하다 보니 이번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외부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해온 것이다.

중간 연락을 맡은 이 교수가 “이 기부는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모든 국민의 마음이 모인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설득하려는 이 교수와 완곡히 거부하는 유족들의 아름다운 줄다리기는 석 달여간 이어졌다. 그리고 수락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지난달 22일 연세대에서 처음으로 박 회장과 유족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집’이나 ‘기부’란 말은 나오지 않은 채 끝났다.


유족 측은 이후 “귀한 마음을 이미 감사히 받았으니 집은 더 필요한 분에게 드렸으면 한다”며 끝내 박 회장의 기부를 고사했다. 유족들의 뜻을 전해들은 박 회장은 “더 이상 권하는 것도 유족분들께 폐가 될 것 같다”며 “그 대신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별도로 연세대에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일 연세대에 1억 원을 기탁했다.

사실 박 회장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 회장은 지난해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하며 ‘아너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다. 그 외에도 수시로 소외계층을 찾아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를 만들고 지킨 독립운동가와 순국선열들의 마음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한 일들”이라며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기념관을 개·보수하는 데에도 힘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사업 때문에 만주 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그 쪽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소개된 전시관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너무 낡고 초라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이런 해외 전시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분과 연락이 닿을 수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해외 전시관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안중근의사#유족#독립운동가#연세대#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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