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용 “‘생태계 교란’ 외래식물 130년 지나도 천적 없어…위험성 과소평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6일 22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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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용 한국잡초학회장
이인용 한국잡초학회장
대구 달성습지를 찾은 사람들은 흡사 초록빛 융단처럼 습지를 빼곡히 덮은 넙적한 잎의 덩굴을 보며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은 외래식물인 ‘가시박’이 자생 생태계를 파괴한 모습이다. 주변 땅을 덮으며 빠르게 확산하는 가시박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넓적한 잎으로 햇빛을 가려 토착식물의 생육을 막는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식물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잡초연구실장으로 잡초과 식물들을 30년 넘게 연구해온 이인용 한국잡초학회장은 교란동물에 비해 식물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걱정했다. 이 회장은 “식물은 동물과 달리 일반인들이 구분하기 어렵고 보통 수풀이 우거지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잡초학회가 26, 27일 경북 청송에서 연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로 생태계 교란식물을 정한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2017년 현재 국내에 유입된 외래식물 중 잡초(풀)류는 387종에 이른다. 이 중 생태계 교란생물로 지정된 식물 14종의 분포 면적만 따져도 △돼지풀 426만7380㎡ △가시박 135만7105㎡ △단풍잎돼지풀 85만3310㎡ 등이다.

이 회장은 “외래식물은 천적이 없어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며 “자연적으로 천적이 생기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1876년 개항 당시 들어온 개망초의 천적이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인공적인 방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공방제는 단순히 벌초하거나 땅을 갈아엎는 재래방식에 머물고 있다. 이런 방제로는 외래식물을 근본적으로 박멸할 수 없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식물을 방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가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단순히 벌초하거나 땅을 갈아엎는 물리적 방제는 오히려 종자를 더 퍼뜨릴 수 있어요.”

해외에서는 미생물이나 천적 생물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내년부터 생물학적 방제 연구에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은 내년부터 5년간 친환경·생물학적 방제 연구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교란식물이 대량으로 퍼져야만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본격 방제에 들어간다. 이 회장은 “한해살이인 가시박은 새싹이 나는 4월 천적을 풀면 훨씬 쉽게 박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이 이런 생물학적 방제 연구의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미국에서는 교란식물을 발견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미비하다”며 “새로운 방제 연구와 함께 이런 시스템을 잘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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