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엄마는 혼술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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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이들 없는 낮, 우울해 홀짝홀짝… 알코올질환 여성비율 20% 첫 돌파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주부 A 씨(59)는 부엌 찬장에 숨겨뒀던 소주병을 꺼낸다. 의상 디자이너 일을 그만둔 뒤 집 안에 갇힌 기분을 잊기 위해 시작한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벌써 20년째다. 가족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취했다가 깨기 위해 독한 술을 선호한다. 지난해 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A 씨가 중증 알코올의존증으로 진단받기 전까지 주변의 누구도 그의 증세를 알지 못했다. A 씨는 “아파트로 이사 온 뒤 이웃과 왕래가 없어지자 술 말고는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A 씨처럼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이른바 ‘키친 드링킹’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국내 알코올질환자 중 여성의 비율이 집계 시작(2004년) 이래 처음으로 20%를 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알코올의존 등 관련 정신·행동 장애로 병원을 찾은 7만5356명 중 여성 환자가 1만5974명(21.2%)이었다고 9일 밝혔다. 최근 5년간 남성 환자는 5.1% 줄었지만 여성은 오히려 7.3% 늘어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특히 50대 여성 환자가 급증했다.

혼술 문화가 확산되고 과일소주 등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저도수 주류 시장이 커진 것도 여성 음주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여성 음주 자체를 문제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해 여성이 병·의원을 찾는 데 더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여성 알코올질환자 40만9414명(추정) 중 진료를 받은 비율은 3.9%에 그쳐 남성(6%)보다 낮았다.

여름엔 여성 알코올질환자가 더 늘어난다. 최근 3년간 월평균 여성 알코올질환자는 7월 8322명으로 겨울(12∼2월) 평균(7661명)보다 8.6% 많았다. 전문가들은 더위 탓에 음주량이 늘면서 숨어 있던 문제 행동이 겉으로 나타나는 걸로 봤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은 술을 조금씩 오랜 기간 마시고 취해도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드물어 병·의원을 찾았을 땐 이미 중증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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