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신병원 진단전문의 부족 현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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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병원 의사 추가 진단 못받아… 강제입원 환자 퇴원
서울 대학병원 “정부요청 의사 안와”… ‘기한 2주’ 만료 하루 남기고 인계
16명 선발 출장전담醫 지원 저조… 수요 몰리는 6월말이 더 걱정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정신병동에 강제 입원됐던 환자를 퇴원시켜 논란이 예상된다. 병원은 “환자의 입원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정부에 요청한 추가 진단 전문의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 시 반드시 의사 2명이 판단하도록 한 새 법에 따른 것인데, 정부는 전문의가 부족해 불가피하게 퇴원하는 환자가 몇 명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 A 씨(28·여)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지난달 30일 급성 발작을 일으켜 서울 S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 씨가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등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그를 강제 입원시킨 뒤 이달 2일 보건복지부의 ‘국가 입·퇴원 관리시스템’을 통해 추가 진단 전문의의 출장을 요청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다른 병원 소속 전문의의 추가 진단 없이는 환자를 2주(입원 첫날은 제외)까지만 입원시킬 수 있다.

S병원은 추가 진단 기한이 완료되기 전날인 12일까지 추가 진단 의사가 오지 않자 가족을 불러 A 씨를 퇴원시켰다. 추가 진단 없이 A 씨를 병원에 붙잡아두면 개정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는 추가 진단의사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해 이달 29일까지 한시적으로 ‘추가 진단 전문의를 다른 병원 소속이 아닌 같은 병원 동료 의사로 대체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S병원 측은 그런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담당 교수는 “보름 정도만 더 입원 치료를 받으며 투약 수준을 조절하면 상태가 크게 호전될 수 있는 환자였지만 처벌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퇴원시켰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번 사태가 병원 측이 지침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기존 환자들의 입원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추가 진단 수요가 몰려 ‘전문의 부족 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전문의 16명을 새로 뽑아 출장 진단을 전담시키기로 했지만 지원자가 적어 이달 말 투입될 인력은 5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A 씨처럼 추가 진단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퇴원한 환자가 전국적으로 몇 명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이후 이달 9일까지 강제 입원된 환자 1167명 중 아직 추가 진단 전문의가 배정되지 않은 환자는 326명인데, 현행 시스템으로는 이 중 증상이 나아져 스스로 퇴원한 사례와 전문의 부족에 따른 불가피한 퇴원을 구분해 집계할 수 없다.

한편 개정법 시행 이후 강제 입원 환자는 하루 평균 106명으로, 2011∼2015년 평균(161명)보다 34.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강제 입원보다는 자발적인 치료를 권한다’는 개정법의 취지에 따라 자의·동의입원과 외래 치료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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