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원 기자의 교육 속풀이] 페버 같은 장기구금자 4년만에 3배로 늘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6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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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속풀이’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던 미등록(불법체류) 청소년 페버 군(18)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동아일보는 5월 17일, 6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그림자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페버 군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페버 군은 많은 이의 도움으로 50일 만에 보호소에서 나왔지만,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

지난달 17일 동아일보(A1·8면) 보도 후 2일 풀려난 미등록(불법체류) 청소년 페버 군은 지난 2월 전남 순천의 한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가족의 생계를 잇기 위해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그는 두 번째 월급을 받기도 전에 당국의 단속에 걸려 50일 동안 보호소에 갇혀 지냈습니다. 언론 보도와 1000명 넘는 시민의 탄원이 아니었다면 페버 군은 더 오래 구금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4월 페버 군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청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페버 측에서 낸 보호일시해제 요청을 기각했습니다. 같은 방에서 지낸 한 스리랑카인 남성은 올해로 구금 3년 째, 현재도 보호소에 있습니다.

페버는 4월 중순 보호소에 구금된 뒤로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구금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내일이면 집에 갈 수 있겠지’ 하고 품던 희망은 차츰 희미해졌습니다. 구금 50일이 가까워지니 자살충동까지 느꼈습니다. 머리 속엔 ‘다 포기하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기간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장기 구금’은 인간의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까지 망칩니다. 실제로 국제난민지원단체 예수회난민서비스(JRS)가 2010년 발표한 보고서(Becoming Vulnerable in Detention)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외부와 단절된 채 보호소 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언제 풀려날지 알지 못하는 ‘정보 부재’ 상태 자체가 구금된 외국인의 정신·육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외국인 장기 구금은 날로 심각해지는 실정입니다. 한국 정부가 장기 구금하고 있는 외국인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따르면 6개월 이상 장기 구금된 외국인은 2012년 39명에서 지난해 111명으로 4년간 약 3배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1년 이상 구금된 외국인도 7명에서 37명으로 5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7년 5월 현재를 기준으로 1년 이상 구금 중인 외국인은 35명이나 됩니다. 구금된 기간과 무관하게 보호소에 수감된 외국인 수가 같은 기간 1.5배로 늘어난 통계와 비교하더라도 외국인 장기 구금 증가폭은 가파릅니다.

물론 죄를 지은 자는 감옥에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법원은 그가 얼마나 오래 수감돼야 할지 양형 기준에 따른 판결을 내립니다. 신체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릴 기본권이고, 권리를 제한하려면 법률과 적법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페버 군 같은 외국인을 구금하기 위한 법에는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출입국관리법 제62조 1항은 국내에서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을 송환하기 전까지 보호시설에 구금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구금 기간에 상한선 등 구체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상한이 없으니 보호소에 수감된 외국인은 자신이 언제까지 구금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비롯한 4명의 헌재 재판관은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의 기약 없는 구금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청구인(구금된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또 외국인 구금이 형사절차상 체포·구속과 같이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객관적 중립적 지위에 있는 자가 인신 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구금 기간이나 기간 연장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가 심사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기약 없는 장기 구금은 국제적 기준에도 어긋납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유엔난민기구는 구금 상한이 법률에 의해 규정돼야 하며, 상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구금은 그 자체로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약 없는 구금이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인 구금 상한을 법에 명시해야한다는 취지의 개정 법률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국회에서 출입국관리법의 구멍이 메워질 수 있을까요. 지켜봐야겠습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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