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박병대 대법관 “사법권 독립, 자칫 깨지기 십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퇴임식서 ‘靑주도 개혁’ 우려 표명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박병대 대법관(오른쪽 아래)이 차에 타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박병대 대법관(오른쪽 아래)이 차에 타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사법권 독립은 마치 유리판과 같아서 자칫 깨지거나 흠집 나기 십상입니다.”

박병대 대법관(60·사법연수원 12기)이 1일 퇴임식에서 법원행정처가 최근 사법부 안팎에서 ‘공공의 적’이 되고 청와대 주도로 급진적인 하명(下命) 개혁 움직임이 나타나는 데 대해 완곡하게 우려를 표시했다.

박 대법관은 이날 퇴임사에서 “사법권 독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가치이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고 사법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와 시대의 요구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이럴 때 사법부 구성원들은 신중하고 진중해야 한다. 깊이 생각해서 의견을 모으되 진단은 정확하고 처방은 멀리 보고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대법관은 32년의 법관 생활 중 11년가량을 법원행정처에서 처장과 기획조정실장, 사법정책실장 등으로 근무한 대표적 사법행정 전문가다. 법원행정처는 올해 초 한 고위 간부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를 축소하려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 홍역을 앓고 있다. 이날 퇴임사는 이번 법원행정처 사태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등 대대적 사법부 개혁 논의로 이어지는 데 대해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퇴임사에서 박 대법관은 ‘사법권 독립’을 4차례나 언급했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국회와 행정부에 맞서는 사법권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박 대법관의 ‘사법권 독립’ 강조가 “청와대가 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낸 김형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51)를 대통령법무비서관에 기용해 사법부 인적 쇄신에 나서려는 움직임에 대해 우회적으로 항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퇴임한 이상훈, 박병대 대법관 포함) 가운데 김재형 대법관(52·18기·2022년 9월 퇴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의 후임을 모두 임명하게 된다. 박 대법관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대법원장, 대법관 인사권을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개혁 논의가 법관 이기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제언도 했다. 박 대법관은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을 굳건히 하려는 논의가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살피고, 그렇게 오해되는 것조차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은 퇴임 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전념할 계획이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박병대#대법관#사법권#독립#청와대#사법개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