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자금으로 차 사고 해외여행·자녀 학비까지…비리 천태만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1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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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국내에서 A유치원, B유치원, C유치원 등 총 1500명 규모의 유치원 3곳을 운영하는 설립자 E씨는 지난 2년6개월 동안 유치원 자금 39억3000만 원을 부당 사용했다가 최근 이뤄진 부패척결 정부합동조사에서 덜미를 잡혔다.

조사에서 드러난 E씨의 자금 빼돌리기 수법은 다양했다. E씨는 자신의 외제차 3대 보험금 1400만 원을 유치원 경비로 납부했고, 사학연금 개인부담금 830만 원도 경비 처리했다. 5800만 원 상당의 도자기 등을 산 뒤 “학부모 선물용으로 구입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유치원 시설에 별도의 어학원이 있는 것처럼 등록한 뒤 유치원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유치원 돈을 어학원 계좌로 20억 원 넘게 송금했다. E씨는 또 다른 신도시에도 새로운 D유치원을 세우는 중이었다.

#사례2. F유치원 설립자이자 원장인 G씨는 총 11억1000만 원의 유치원 자금을 빼돌렸다. 두 아들의 대학등록금 및 연기학원 수업료 등 3900만 원을 유치원 원비에서 지출했고, 노래방 등에서 874회에 달하는 개인카드를 쓰고 유치원 경비로 처리했다. 루이뷔통에서 가방과 지갑 등을 사고 ‘교직원 선물 구입’ 명목으로 경비처리 했는데 이런 돈이 2년 간 5000만 원에 달했다. 개인차를 구입한 후 할부금과 보험료, 과태료까지 유치원 돈으로 처리했다.

#사례3. 유치원 2곳을 운영하는 설립자 H씨는 총 6억 원의 유치원 자금을 남용했다. H씨는 교육대표자 정책 최고위과정에서 운영하는 7박9일간의 미국 연수비를 자신의 유치원 양쪽에서 이중으로 청구해 챙겼다. 한 유치원에서 발생한 각종 물품구입 영수증도 복사해 다른 유치원에도 이중으로 회계처리 함으로써 4000만 원 상당의 예산을 이중으로 집행했다.

그는 남편이 운영하는 교재·교구업체에 교구 구입 명목으로 3억1000만 원을 지급하는가 하면, 남편의 캐나다 여행경비 880만 원을 유치원 경비로 처리하고 남편이 현지에서 구입한 156만 원짜리 블루베리 건강식품까지 유치원 교구구입비로 계산했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은 21일 유치원 관할부처인 교육부 및 어린이집 관할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함께 유치원 55곳과 어린이집 40곳 등 총 95곳(전체의 0.18%)의 재정운영 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그 결과 91곳에서 609건의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사실상 거의 모든 곳이 자금운용 위반행위를 한 것으로, 액수로 따지면 총 205억 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어린이집보다는 유치원이, 공립보다는 사립이 자금 투명성에 큰 허점을 보였다. 전체 부당사용액 205억 원 가운데 유치원이 182억 원을 차지했다.

교육부는 “대부분의 국공립 유치원, 어린이집은 정부의 재무회계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미미한 회계처리 실수를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며 “그러나 사학에 해당하는 사립 유치원들은 이 같은 재무관리시스템이 없어 기관 운영비를 개인 쌈짓돈처럼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운영 규모가 커 위반 가능성이 높은 곳들 위주로 조사한 것이라고 해도 12조 원이 넘는 정부지원금을 받는 유아교육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한 설립자가 여러 개의 유치원을 운영하거나 가족 구성원들이 유치원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가족기업형’에서 비리가 다수 드러났다. 한 유치원에서 발생한 비용 영수증을 복사해 다른 유치원에서 이중 회계처리하고, 친인척 회사와 거래하며 금액을 부풀려 부당거래를 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 근무하지도 않는 가족을 직원으로 올려 월급을 지급한 사례도 많았다.

조사 과정에서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복사와 오리기, 풀칠 등으로 서류 조작을 한 경우도 있었다. J유치원은 원장 개인의 보험료로 쓴 돈 300만 원을 교재비로 처리했다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은행 이체처리 결과 건별 상세조회의 거래내용란의 ‘보험료’를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별도의 종이에 ‘교재비’라고 타이핑 친 뒤 그 글자를 오려서 지운 자리에 붙였다. 붙인 자국을 은폐하기 위해 해당 자료를 복사해 증빙자료로 첨부했지만 결국 탄로가 났다.

정부는 “정도가 심각한 8곳을 수사의뢰했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재무관리를 개선하기 위해 세입·세출 항목을 세분화해 오는 9월부터 모든 사립 유치원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자금 유용이 적발될 경우 정부보조금 재정지원을 배제하고, 이미 지급된 지원금도 환수할 수 있게 관련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는 지급된 이미 지원금은 국고로 환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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