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논쟁거리된 초중고 ‘논쟁수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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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3월 교사 지도서 배포… ‘선거연령 18세 확대 논쟁’ 등 수록
“학생들 사회 비판능력 길러줄것” vs “학교가 정쟁의 장 될 우려” 양론

새 학기부터 서울 초중고교에서 ‘만 18세 선거권’ 등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주제로 논쟁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학교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3월부터 서울지역 초중고교에 배포할 교사용 지도안 제작을 마무리했다고 19일 밝혔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형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 자료는 일종의 보이텔스바흐 합의 가이드라인으로 8쪽짜리 리플릿 형태로 제작됐다. 교사가 학교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사회 이슈를 놓고 토론하면서 어떻게 모둠을 짜고 논쟁해야 하는지,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논쟁 수업 예시 주제로 초등은 ‘아동노동 수입품 규제’, 중등은 ‘선거권 연령 18세 확대 논쟁’이 수록됐다.

시교육청은 학생들이 사회적 쟁점을 비판적,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자주적 의사결정 능력을 기르도록 하겠다는 목적이지만 “학교가 정쟁의 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일반고 김모 교장은 “만 18세 선거권 같은 주제는 정치권에서도 찬반이 나뉘고 민감한 문제라 걱정된다”며 “이미 학교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육청 차원에서 사회 이슈로 논쟁하라고 권할 필요까지 있느냐”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비판 능력을 길러주는 건 당연하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교육청이 특정 시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건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고 이모 교장은 “교육감이 선거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각종 행사까지 여는 상황에서 자료에 해당 주제를 적시하면 학생들에게 특정 시각을 주입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차라리 학생들에게 유권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인지를 토론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감은 “대선이 머지않은 시점에 교사가 특정 후보나 공약에 대한 선호를 드러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하느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반면에 교사가 교육자로서 원칙을 지켜가면서 학생들에게 주요 이슈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더 교육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시교육청의 ‘서울형 민주시민교육 논쟁 수업’ 가이드라인은 논쟁 수업 시 교사가 “특정 이념이나 가치, 사실, 증거를 강조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고모 교감은 “논쟁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사실과 거짓을 구별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며 “최근 온라인을 통해 ‘가짜 뉴스’도 많이 유포되는데 교사가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아 주는 조정 기능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논쟁 수업을 통해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주제 선정이나 진행 과정에서 토론이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사가 그런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연수나 교수학습공동체 등도 함께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보이텔스바흐 합의 ::


1976년 독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정치가, 연구자, 교육자가 토론 끝에 정립한 민주시민교육 및 정치교육에 관한 세 가지 원칙. △교사가 학생에게 특정 의견을 주입하거나 학생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저해하면 안 되고(교화 및 주입 금지) △학문이나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학교 현장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하며(논쟁성 재현) △학생이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이해관계 지각 원칙)는 내용.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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