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철]박원순과 노후 경유차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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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뿌연 날이 부쩍 많아졌다. 미세먼지 때문이란다.

최영철 주간동아팀 차장
최영철 주간동아팀 차장
 한반도 상공을 온통 잿빛으로 물들인 이 물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대기오염의 지옥인 중국 탓이라는 이들도 있고 ‘주범 중국, 종범 한국’이라는 설도 있다. 한때 환경부는 고등어, 삼겹살을 그 대열에 슬쩍 끼워 넣었다 전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데에는 맑은 하늘을 자주 못 보는 데 대한 분노가 한몫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최근 환경부와 서울시가 미세먼지 발생의 죄를 애꿎은 서민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2005년 이전에 등록한 2.5t 이상 노후 경유차(종합검사 불합격 또는 미이행 차량)는 올해부터 서울시내 전역에 발을 들일 수 없도록 한 것. 일단 서울시내에 들어와 단속카메라에 찍히면 첫 회는 경고, 이후부터는 한 번 걸릴 때마다 20만 원씩 총 10회 2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단속한 지 2주가량 된 이달 18일 현재 이미 427대가 적발됐고 이 중 47대에 과태료 20만 원이 부과됐다.

 문제는 출고된 지 11년 이상 된 이들 ‘똥차’의 소유주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영세 화물운송업자라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한 차량은 단속에서 제외되고, 장치 설치비의 90%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서민 피해는 없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경기 불황으로 일감이 급격히 줄어 자부담 비용조차 이들에겐 큰 부담이다. 저소득층에겐 설치비 전액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대상자는 극소수다. 이들이 저감장치 설치를 피하는 근본적 이유는 일단 설치하면 폐차할 때 환경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금을 단 한 푼도 못 받기 때문이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금이란 배기가스 정밀검사를 통과한 노후 경유차에 한해 폐차할 때 연식에 따라 잔존가액을 보상해 주고 신차 구입 때 최대 143만 원까지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보상액과 세금 감면액을 합쳐봐야 신차 가격의 1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상황에서 당장의 생계수단을 버릴 차주는 별로 없다. 더욱이 배기가스 정밀검사를 통과한 차량은 운행 제한 대상도 아니어서 폐차를 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영세업자의 목을 죄는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은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 조례를 근거로 일부 지역(서울시 전역의 5%)에서 시작했지만 환경부가 이를 모델로 2015년 7월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전면 확대됐다. 올해부터는 서울시 전역, 내년에는 인천시 전역과 경기도 17개 시군, 2020년에는 경기도 전역에서 노후 경유차의 운행이 제한된다. 환경부는 가까운 시일 안에 운행 제한 대상을 2.5t 미만의 경유 승용차나 승합차로 확대할 계획이다.

 활발한 대권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시장은 “경제적 불평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의 미세먼지 오염에 대한 경유차의 책임 정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영세업자의 생계를 이토록 위협하는 게 과연 경제적 평등일까.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권의 행사 또는 이동의 자유 등 개인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모든 노후 경유차에 배기가스 저감장치 설치비를 전액 지원하고, 이를 설치해도 폐차 보상금과 신차 구입 혜택을 주면 된다. 생계용 노후 경유차의 도심 진입을 강제로 막는다고 해서 서울의 하늘이 금세 맑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개발독재시대가 아니다.

최영철 주간동아팀 차장 ftdog@donga.com
#미세먼지#노후 경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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