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친구와 함께 필리핀에 가서 이른바 ‘황제여행’으로 불리는 성매매 관광을 하기로 마음먹은 안모 씨(30).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구하다 카페 관리자로부터 필리핀 현지 가이드 김모 씨(47)를 소개받았다. 김 씨는 호텔 예약과 성매매 알선 등 모든 일정을 짜줬다.
안 씨는 필리핀 중부의 유명 관광지 앙헬레스에 도착해 김 씨가 소개한 호텔에서 현지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국가수사국(NBI) 경찰관 3명과 중년 여성이 호텔방으로 들이닥쳤다. 중년 여성은 “침대의 여자가 내 딸인데 미성년자”라고 말했다. 결국 경찰서로 연행된 안 씨. 그런데 이번엔 40대 후반 정모 씨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직원이라며 접근했다. 정 씨는 “돈으로 경찰을 매수하자. 필리핀 감옥은 쥐가 들끓어 살 수 없는 곳”이라고 제의했다. 두려움에 떨던 안 씨는 현지에 갖고 간 현금 130만 원에 한국에서 송금 받은 5000만 원까지 필리핀 경찰 측에 건넨 뒤 풀려났다.
이후 정 씨와 필리핀 경찰의 관계에 의심이 든 안 씨는 필리핀 현지 파견 코리안데스크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하룻밤을 보낸 여성의 어머니와 대사관 직원이라고 했던 정 씨의 신원이 가짜로 드러났다. 현지 경찰도 가이드 김 씨에게 매수돼 범행에 가담한 것이었다. 김 씨가 설계한 일명 ‘셋업(함정) 범죄’였던 것. 김 씨는 한국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피한 전과자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11일 송환해 김 씨를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했다”며 “달아난 정 씨를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을 타깃으로 한 필리핀 현지의 셋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필리핀 밤 문화’ 등의 제목으로 홍보하는 개인 관광가이드를 접촉하거나 유흥가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필리핀 여성과 성관계 시 셋업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유의사항을 게시하기도 했다.
경찰청은 15일 해마다 한국인 피살자가 10여 명씩 발생하는 필리핀의 한국인 도피 사범 송환자 수가 코리안데스크의 활동으로 2015년 47명에서 지난해 84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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