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부상 딛고 구조현장 복귀… “재난현장서 시민들 생명 지켜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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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노석훈 소방장

왼팔을 잃은 부상을 이겨 내고 구조 현장에 복귀한 노석훈 소방장이 6일 화재 출동 이후 광주 서부소방서 화정119안전센터에서 새해에도 시민들을 돕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왼팔을 잃은 부상을 이겨 내고 구조 현장에 복귀한 노석훈 소방장이 6일 화재 출동 이후 광주 서부소방서 화정119안전센터에서 새해에도 시민들을 돕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6일 오후 5시 반 광주 서부소방서에 ‘금호동의 한 사찰 인근에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가 접수되자 서부소방서와 119안전센터 5곳에서 소방관 40여 명이 소방차 11대를 타고 긴박하게 출동했다.

 화정119안전센터에 있던 노석훈 소방장(41)도 출동 벨을 듣고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그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119 지휘 차량에 탑승한 뒤 각종 기기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119 지휘 차량과 구조 차량, 일부 소방차에는 재난 현장 영상을 광주 소방안전본부 상황실에 실시간 전송하는 기기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건물 내 화재나 차량이 접근하기 힘든 재난 현장은 소방관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웨어러블로 즉시 전송한다.

 신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불이 난 곳은 없었다. 소방관들은 주위를 살펴보고 화목 보일러에서 발생한 냄새를 착각한 오인 신고라는 것을 확인했다. 상황이 10분 만에 종료되자 노 소방장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1년 반 전 말벌 집을 제거하다 고압 전류에 감전돼 왼쪽 팔꿈치 아래를 모두 잃은 노 소방장은 새해에 구조 현장 업무에 복귀했다. 화목 보일러 오인 신고는 그가 올해 두 번째 출동한 구조 현장이다.

 그는 이날 “아픈 환자나 위기 상황에 놓인 분들을 돕는 일이 좋다”라며 “사고로 왼손을 잃었지만 소방관을 천직이라고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 소방관에 끌린 고흥 ‘촌놈’

 천성이 소방관이라는 그는 전남 고흥 출신이다. 가족과 광주로 이사 와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동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건축기사로 아파트, 공사 현장을 2년간 누비던 그는 2003년 광주 동구 지원동의 한 공사 현장에서 난 불을 계기로 소방관을 꿈꾸기 시작했다. 늦은 밤 공사 현장 간이식당, 이른바 함바집에 불이 나자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마를 진압했다. 소방관이 불을 끄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하, 소방관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돕는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진로를 틀었다. 소방관을 목표로 시험 공부에 돌입했고 2005년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다. 화재, 재난 현장을 누비며 구조 작업을 펼쳤다. 건축기사 경력 덕에 소방 행정도 맡았다.

 11년 동안의 소방관 생활은 보람이 컸지만 역경도 수두룩했다.

 노 소방장은 2006년 여름 처음으로 시신을 봤다. 차량이 광주 북구 청풍동 다리 교각을 들이받아 불이 났다. 운전자는 숨져 시신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틀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후 각종 재난 현장에서 시신 10여 구를 더 봤다. 안타까움이 더해 갔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구조 현장을 뛰어다니는 소방관 대부분에게 정신적 후유증인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트라우마 못지않게 소방관을 괴롭히는 것은 만취한 사람들의 욕설과 폭행이다. 그래도 소방관은 119에 도움을 요청한 환자나 피해자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이 고통을 못 이겨 욕설과 폭행을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하고 잊으려 노력한다.

○ 말벌 집에 잃은 왼손, 그리고 복귀

 노 소방장의 최대 위기는 2015년 8월 14일 오후 5시경 찾아왔다. 그는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병원 인근 전봇대에 말벌 집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먼저 전봇대 옆 은행나무에 있던 말벌 집 하나를 제거했다.

 이후 전깃줄 중간에 있던 또 다른 말벌 집을 놓고 고민했다. 문제의 말벌 집은 전깃줄 세 가닥 중 가운뎃줄에 붙어 있었다. 고압 살수기로 말벌집을 날려 버리면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말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전깃줄 주변을 살펴본 노 소방장은 ‘고압 전류’라는 표지가 없어 일반 전깃줄로 판단하고 손수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말벌 집에 손을 대는 순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문제의 말벌집이 붙은 전깃줄에는 2만5000V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쓰러진 지 사흘 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나흘 뒤 왼쪽 팔꿈치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온몸의 70%에 입은 2∼3도 화상으로 생긴 농과 피부를 제거하고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4개월 동안 24차례의 수술을 견뎌 내야 했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 내는 데 부인(38)과 초등학생 두 자녀가 힘이 됐다. 동료 소방관과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수술비와 의수(義手) 비용을 보태 줬다. 다행히 2015년 8월 경기 파주시 철책선 지뢰 사건으로 부사관 2명이 다친 이후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70%만 보태 주던 병원비와 의수 제작 비용 전액을 국비에서 지원해 주게 됐다.

 노 소방장은 현장에 돌아가겠다는 집념으로 2015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전동 의수를 차고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의수를 익숙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매일 5시간씩 훈련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광주 서부소방서에 복귀한 뒤 행정 업무를 맡다가 1일부터 그토록 바라던 구조 현장으로 돌아왔다.

○ 시민의 격려가 진정한 보약

 수술 여파로 그는 여전히 몸이 욱신거린다. 비가 오거나 찬바람이 불면 더 힘들다. 아픔을 잊기 위해 쉬는 날이면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참기 힘들 때는 진통제나 파스에 의존하지만 스트레칭이나 자전거 타기로 이겨 내려 노력한다. 초등학교 3, 4학년인 딸과 아들은 제일의 조력자다.

 운동에 몰두하는 이유는 동료에게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각오 때문이다. 재난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동료에게 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하다 광주소방학교의 교수 요원으로 일하는 것이 꿈이다. 건축 전문 지식 등을 살려 신임 소방관에게 소방 행정 지식을 전하고 싶단다.

 그가 육체적으로 힘든 소방관 생활을 버티는 또 다른 힘은 시민들의 격려다. 그는 2014년 여름 60대 노인이 광주 북구 양산호수공원에 스마트폰을 빠뜨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 노인에게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지갑에 든 신용카드 여러 장이 더 중요했다. 30분 동안 뜰채로 호수 바닥을 뒤져 결국 찾아냈다. 그 노인은 “너무 고맙다”라며 수박 한 덩어리를 사 줬지만 그는 “마음만 받겠다”라고 말한 뒤 현장을 떴다.

“119신고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늦었다며 화를 내기도 하지만 고맙다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노 소방장의 다짐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노석훈#광주 서부소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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