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기초학문 교육… 문제 해결력-시대흐름 읽는 능력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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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한국교양기초교육원 공동기획 대학 교양교육 혁신의 길]<中> 선진국 대학의 교양교육

세계적 대학들은 탄탄한 기초교양교육을 통해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4년간 고전 100권 읽기로 유명한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의 세미나 수업 장면. 사진 출처 세인트존스 칼리지
세계적 대학들은 탄탄한 기초교양교육을 통해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4년간 고전 100권 읽기로 유명한 미국 세인트존스 칼리지의 세미나 수업 장면. 사진 출처 세인트존스 칼리지
 미국 메릴랜드 주의 ‘세인트존스 칼리지’는 전교생이 45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대학이지만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이 학교 졸업생을 앞다퉈 스카우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대학의 인기 비결은 고전 독서를 통한 독특한 교양교육 덕분이다.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전교생이 똑같이 밟는다. 특별히 교육과정이라고 정한 것도 없고 교수와 학생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상호 지적 작용이 가장 큰 원칙이다.

 평가도 A, B, C학점 같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세미나에 참가한 교수 서너 명이 학생 한 명을 놓고 집중 질문을 던져 다양한 능력을 종합 평가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가 성적표인 셈이다. 이런 평가 과정은 너무 힘들어 ‘교수가 달달 볶는다’는 뜻의 ‘돈 래그(Don Rag)’로 불리기도 한다.

 이 대학이 고전 읽기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독서를 통해 기초학문 능력을 쌓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다는 교육 철학 때문이다. 교수들은 연구 성과를 학생 교육에 쏟고 싶은 동기가 강하고, 다른 전공 교수들과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업무 부담을 불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대학들은 학교 특성에 맞는 다양하고 탄탄한 교양교육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공통점은 교양교육이 특정 학과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학문 간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하버드대는 30년간 유지해 오던 학부의 기존 핵심 교양 체계를 2009년부터 해체하고 ‘새 교양교육(New General Education)’을 도입했다. 기초학문을 골고루 배우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종전의 교양교육이 학생들을 학문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면 새 교양교육은 거꾸로 학문을 삶 속으로 초대해 삶을 학문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키워 주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양교육은 학문 단위가 아니라 삶의 단위 또는 주제 영역으로 진행된다. ‘미학적 해석적 이해’ ‘문화와 신념’ ‘생명체계의 과학’ ‘세계 속의 미국’ 등 8개 영역을 제시하고 각 영역에서 한 과목 이상 이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주변의 통계: 당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할 가능성’이란 강좌는 재정투자, 온라인 데이트, 의료실험, 초콜릿 와인 시음 등 통계원리와 추론을 실생활과 연계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언뜻 실용 강좌 같아 보이지만 수준이 매우 높다. 학생 평가는 필기시험 대신 구두시험을 권장한다.

 예일대는 전통적 교양교육으로 유명하다. 전공과목 진입 이전에 기초학문 과목을 저학년 때 모두 이수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분필수’ 과목을 더 듣게 함으로써 교양과정과 전공과정이 융합되고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우수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심화 계발하기 위한 ‘지도 탐구(Directed Study)’를 운영한다. 신입생의 10% 정도는 문학, 철학, 정치역사사상 등 3개 분야의 교과과정을 1년 동안 수강하고 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김지현 교수는 “미국 대학들은 학부교육 자체가 기초학문 교육과정인데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는 교육을 통해 우수한 학생으로 키워낸다”며 “하버드에서도 새 교양교육의 연성화(軟性化)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획일성을 탈피하고 시대 변화를 선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대학들도 교양교육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시대에 늦은 교육방법인 경우가 많다”며 “교양교육 정착 노력은 계속하되 새로운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대학은 미국과 달리 엘리트 교육의 성격이 강해 교양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영국에선 이미 고교 단계에서 수준 높은 교양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연구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교양교육을 놓고 시행착오가 있었다. 1980년대 많은 대학이 교양학부의 효용성을 낮게 보고 줄줄이 폐지하고 각 단과대학에 통합시켰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교양교육 부실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많은 대학이 이를 후회했지만 일본 대학의 보수적인 제도 탓에 되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도쿄대는 교양교육을 가장 잘 하는 학교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교양교육을 위한 독립적인 학사 구조를 갖고 전공, 대학원과 연계해 유기적으로 운영해 온 덕분이다.

 도쿄대는 고마바(駒場)와 혼고(本鄕) 두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고마바 캠퍼스가 1, 2학년 때 기초학문 교육을 전담하고 3, 4학년 때 혼고 캠퍼스에서 전공을 가르친다. 교양교육에 관심을 갖고 3, 4학년 때도 교양 전공을 계속하는 학생도 많은데 대부분 우수 학생들이다.

 도쿄대 교양학부의 성공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젊은 교수가 많고, 교양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연구 성과가 학생 교육에 반영되게 교육과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도쿄대는 2010년 새로운 교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교양교육고도화기구(KOMEX)를 설립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학생 교육을 강화하고 자연과학, 기술 분야의 융합적인 연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홍성기 한국교양교육학회장은 “일본에서 외국 대학 학위보다 일본 대학의 학위를 높게 평가하는 자신감은 탄탄한 학문 배경과 지식생태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며 “교양교육의 힘이 바로 대학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인트존스 칼리지#교양교육#하버드대#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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