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 배려하는 해녀 문화, 세계유산 될 만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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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말 유네스코 등재 확실… 미용사 출신 34세 제주해녀 채지애씨

“해녀 생활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는 30대 제주해녀 채지애 씨. 그가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해녀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해녀 생활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는 30대 제주해녀 채지애 씨. 그가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해녀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달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식품산업전’. 무명 저고리에 물적삼 등 전통 해녀복을 입은 여성이 연사로 나섰다. 주인공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앞바다에서 해녀 일을 하는 채지애 씨(34). 그는 고무 잠수복이 나오기 전인 1970년대 해녀들이 입던 물옷을 입고 해녀문화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직접 만든 파일로 다부지게 발표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 못지않았다.

 제주 해녀문화는 이달 말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이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채 씨는 해녀 3년 차.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서울에서 미용실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10년이 되어 갈 무렵, 쳇바퀴 같은 생활에 지치기 시작했다. 미용실 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일찍 결혼해 두 아이를 둔 그는 아이들이 잠든 후 귀가하는 날도 허다했다.

 결국 2012년 결단을 내렸다. 아이 키우기에 제주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엄마가 하던 해녀 일을 하기로 했다.

 “바닷가에서 자라온 터라 잠수만큼은 자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싶어서였죠. 하지만 엄마는 딸만큼은 고된 해녀 일을 시키지 않겠다며 반대했어요. 주변에서도 ‘귀하게 키운 딸을 왜 바다로 내보내느냐’고 했고요.”

 그는 “할머니 해녀들도 하는 물질을 젊은 사람이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가족을 설득해 해녀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친 바위에 다리를 긁히기 일쑤였고, 물질은 만만치 않았다.

 “해산물을 채취하려면 해저 지형과 해산물 위치 등을 체득해야 하는데, 제가 오만했어요. 해녀 세계에선 체력과 젊음보다는 경험과 지혜가 우선이란 걸 깨달았죠. 해녀 일을 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됐어요.”

 그는 물질 첫날 태왁(해녀의 바구니)에 해산물을 하나도 담지 못했다. 선배 해녀들은 “우리 막둥이가 바다에서 빈손으로 나가게 할 수 없다”며 자신들이 딴 소라와 미역 등을 한가득 채워줬다.

 “구성원들끼리 서로 짓밟기도 하는 도시의 회사 생활과 확연히 달랐죠. 이게 바로 해녀문화구나 싶었죠.”

 그가 경험한 해녀 일엔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해녀는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은 수심 8m 이상에서, 중군은 3∼8m에서, 하군은 3m 이하에서 작업해야 한다. 잘하는 사람이 초보자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법도 배웠다. 큰 해산물이 보여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바로 따지 않는다. 나올 때 물숨(물속에서 쉬는 숨)을 마셔 사고 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숨을 아껴야 한다. 자그마한 전복이나 소라를 따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10cm보다 작은 전복이나 7cm보다 작은 소라는 바다에 놓아준다. 해녀들 나름대로 ‘바다를 지키는 법’이다.

 “어머니 세대에선 생계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녀 일을 시작한 경우가 많죠.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등 자격지심을 갖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전 제주 해녀만의 독특한 문화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유네스코도 이를 높이 평가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게 아닐까요.”

 그는 해녀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귤 농사를 병행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해녀문화를 알리는 일이라면 전통 해녀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해녀로 남고 싶다”는 그는 ‘해녀 채지애’라는 명함을 남기고 제주로 돌아갔다.

김유영기자 abc@donga.com
#해녀#제주 해녀#유네스코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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