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대 슈뮈커 박사 “이순신 승리는 거북선 덕분… 디지털 세상에도 숙련된 장인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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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계연구원 창립 40주년… 임용택 원장-헬무트 슈뮈커 박사 대담

○임용택 원장
아무리 좋은 정보기술도 상품으로 못 만들면 소용없어… 기계공학 미래 여전히 중요
○슈뮈커 박사
독일 기업 경쟁력 비결은 기술… 각 분야에 히든챔피언 수두룩… 대기업-中企 균형발전 모색해야

《 한국기계연구원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18일 대전 유성구 호텔ICC에서 ‘기계공학과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미래기계기술포럼 코리아(IFAME)’를 열었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과 LG전자 이정수 소재기술원장, 스위스의 파울셰러연구소 헬무트 시프트 박사, 독일 에어랑겐 레이저기술연구소 피터 호프만 교수, 미국 코네티컷대 파미르 알페이 교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김창진 교수 등 세계적인 기업과 연구소의 전문가 350명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장(왼쪽)과 헬무트 슈뮈커 박사가 대전의 기계연구원 원장실에서 16일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정보기술(IT)이나 화학이 발전해도 결국 상품화를 위해서는 기계공학이 중요하고 숙련된 장인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장(왼쪽)과 헬무트 슈뮈커 박사가 대전의 기계연구원 원장실에서 16일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정보기술(IT)이나 화학이 발전해도 결국 상품화를 위해서는 기계공학이 중요하고 숙련된 장인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포럼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았다. 1977∼1982년 서울과 경남 창원 등지에 머물면서 한국의 기계산업 발전을 지원하고 설립 초창기 기계연구원의 전신인 기계금속시험연구소에 조언을 했던 헬무트 슈뮈커 박사다. 그는 최근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온 뮌헨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열린 한국문화특별전 기사를 보고 한동안 까맣게 잊었던 한국을 떠올려 40주년 기념식에 참석을 자원했다. 기계연은 이날 기념식에서 뜻밖의 손님의 회고담을 경청하고 그를 명예연구원으로 위촉해 환영의 뜻을 전했다. 기계연구원의 40년 전 자문역과 현재의 임용택 원장이 공학의 경쟁력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대담은 16일 기계연 원장실에서 이뤄졌다.

▽임용택=
환영합니다. 지난달 프라운호퍼 생산기술연구소(IPT)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독일 아헨을 방문했는데, 우린 빨리 달려왔다고 생각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헬무트 슈뮈커=충분히 발전했습니다. 내가 증인입니다. 1973년 박정희 정부는 창원에 공업단지를 만들고 수출을 위한 공산품 품질인증을 추진했습니다. 독일의 해외 원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기계금속시험연구소를 설립했고 이 연구소가 기계연구원으로 발전했죠. 당시 독일은 한국을 독자적인 발전이 가능한 나라로 꼽았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 평가는 맞아떨어졌습니다.

▽임=독일 기업은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핵심 비결은 무엇입니까.

▽슈뮈커=내가 사는 뮌헨 교외의 인구 10만 명의 작은 마을에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있어요. 직원이 80∼100명에 불과하지만 모바일 통신에 필요한 필터링 기술이 세계 최고인 ‘Wayne Wright’입니다. 독일은 각 분야의 이런 히든챔피언(강소기업)이 많아 경쟁력을 갖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지식과 전통,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한 비전과 추진력을 갖고 있습니다.

▽임=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계연이 영문 이니셜(KIMM)로 지식창출(Knowledge), 혁신(Innovation), 동기부여(Motivation), 시장창출(Marketability)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는데 방금 말씀하신 가치들과 일맥상통하는 듯합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기술(IT)도 상품으로 만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기계공학은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한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슈뮈커=맞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탄탄한 기계공학과 숙련된 장인이 필요한 이유죠. 이순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물리친 것은 뛰어난 전략적 능력도 있겠지만 엔지니어들이 만든 거북선 덕분 아닌가요. 다만 대기업 친화적인 산업구조라도 중소기업과 균형 있는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숙제가 있습니다.

▽임=한국에서 좋은 시도가 있습니다. 현 정부 출범과 더불어 생긴 미래창조과학부가 전국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대기업이 중소·중견 기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임=이번 포럼에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나요.

▽슈뮈커=그린에너지 문제입니다.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효율의 제고 같은 것들이 앞으로 중요하죠. 폴크스바겐 사태에 대해 들었을 겁니다. 조직 운영자들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빚어진 겁니다. 그들은 더 이상 혁신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디젤 엔진을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자 정부와 고객을 속이기로 했던 겁니다.

▽임=우리는 아주 경쟁이 심한데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중국 칭화대 설립 100주년 기념식에 갔더니 세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총출동했습니다. 중국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중국은 한국의 은퇴 과학자들에게도 손을 내밉니다. 그들의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른바 ‘1000인 프로젝트’입니다. 헬무트 박사님도 전화를 받지 않으셨나요?(웃음)

▽슈뮈커=국가든 회사든 국제적 수준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글로벌라이제이션’입니다. 독일은 시니어 은퇴자를 위한 공적활용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정년보다 이른 50∼52세에 퇴직하면 연구소나 리크루트 기관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직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임=우리 젊은이들은 안정적이라는 공무원에 너무 많이 지원하고 공무원 가운데서도 출세가 보장되는데도 경쟁이 치열한 자리에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열정과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슈뮈커=요즘 독일 고교 졸업생의 절반 가까이가 대학에 갑니다. 내가 공부할 때 5% 정도였으니 10배나 늘었죠. 하지만 임 원장님도 공부를 마쳤을 때 가족과 승용차, 휴일을 원했을 겁니다. 도전정신은 유지돼야 하지만 즐거움과 휴식은 동전의 다른 측면이기도 합니다.

▽임=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 교회는 독일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독일인들은 이 교회가 전쟁으로 피해를 입자 그대로 보존하고 옆에 예배당을 간소하게 지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부수고 새로운 교회를 지었을 겁니다. 여기서 독일의 ‘역사성’과 ‘지속성’을 봅니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떤 연구가 시작되면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유행이나 세파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됩니다.

▽슈뮈커=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막스플랑크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68개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본부 격)는 예산을 쓸 때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습니다.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막스플랑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인 이슈를 배제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죠.

▽임=우리가 프라운호퍼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연구소의 ‘자율’과 ‘책임’입니다. 국제자문단의 평가를 통해 과제를 선정하는 방식도 우리가 도입해 볼 만합니다. 기술의 최종 목표가 시장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연구소와의 협력을 강화해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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