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너는 ○○가 될 거야”… 아이들에게 꿈 키워주는 교장선생님

  • 동아일보

<53> 황인수 용정중학교 교장

황인수 용정중 교장은 학생들이 3년 동안 삶의 목표인 꿈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고교나 대학에 진학해도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8일 밝혔다. 황 교장은 용정중 졸업생이나 학부모들이 자주 학교를 찾아오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정도로 끈끈한 정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황인수 용정중 교장은 학생들이 3년 동안 삶의 목표인 꿈과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고교나 대학에 진학해도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8일 밝혔다. 황 교장은 용정중 졸업생이나 학부모들이 자주 학교를 찾아오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질 정도로 끈끈한 정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8일 오전 6시 전남 보성군 미력면 용정중학교. 학교 앞을 흐르는 보성강에서 피어오른 새벽안개 사이로 생기발랄한 소리가 들렸다. 산책을 하던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나는 ○○가 될 거야’라고 자신의 꿈을 외쳤다.

학생들은 낮에 공부를 한 뒤 오후 8시 반 간식을 먹고 자율학습을 했다. 이후 기숙사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남녀 기숙사는 방 3개, 거실, 자습실 등으로 이뤄진 아파트 형태다. 아파트 한 채에서 12명이 생활하며 규칙을 토론으로 정하는 이색 방식으로 운영된다.

용정중은 전교생이 132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학교다. 용정중 학생 6명은 올 5월 한국 학생들을 대표해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열린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했다. 용정중은 역사가 1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어 입학 경쟁률이 8 대 1에 달한다.

용정중이 짧은 역사에도 비약적 도약을 한 비결은 꿈을 키워주는 교육 덕택이다. 삶의 목표인 꿈을 세워주는 교육의 중심에는 황인수 교장(73)이 있다. 그는 37년간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부인과 자녀가 없다. 총각이라는 표현을 해도 되냐는 질문에 황 교장은 “7년 뒤면 80세인 산수(傘壽)를 바라보는데 총각은 적절치 않고 독신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학교를 만들었고 월급은 운동장 확장비 등 시설 개선과 교사들의 대학원 학비에 보태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동창회가 학교 운영의 주축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통상 사학(私學) 이사장들이 학교를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과 전혀 다르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갑니다. 농사꾼 될 사람이 평생 공직생활을 했는데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고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황 교장은 사회 환원을 고민하던 중 교육에 대한 전문성, 열정과 사랑이라는 장점을 깨닫고 학교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보성군 조성면 농부의 집안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로 유학 왔지만 형편이 어려워 이곳저곳을 전전긍긍했다.

또래보다 2, 3년 늦게 1964년 보성 농업고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그러나 동네에서는 ‘황인수가 군인이 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거나 군에 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는 군에 자원입대해 강원 인제에서 야전공병으로 복무하며 공부했다.

황 교장은 제대한 직후인 1967년 당시 총무처 9급 공채에 합격했다. 공직 생활 첫 발령지는 전남 보성교육청이었다. 공직에 합격하자 대학에서 공부해 고시에 합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당시 공직자들은 교통이 불편해 광주에서 근무해야만 야간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전남도교육청 총무과장을 무작정 찾아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읍소했다. 그는 당시 조선대 법정대에 합격한 상황이었고 도교육청은 광주 동구 동명동에 자리했다.

그는 두 차례 절박한 간청 덕분에 도교육청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낮에는 공직 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학에 다녔다. 육군 중령 출신이던 총무과장은 그의 학비를 2년간 보태줬다. 그는 1974년 대학을 졸업하고 도교육청 기획감사담당관, 기획관리국장, 부교육감을 역임했다. 행정직이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시군 교육청 과장으로 일할 때 교사, 교장들과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까?’에 대해 자주 심야토론을 했다.

전남도교육청 민선 초대 교육감인 오영대 씨는 1993년 그의 교육적 식견을 알아보고 전남교육발전 장기계획을 짜도록 했다. 수립한 장기계획은 전국 시도교육청 1등을 차지했고 청와대 비서관이 자문하러 찾아오기도 했다. 당시 비서관은 황 교장이 교육행정직이라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오영대 전 교육감이 그에게 “나는 도장 찍는 교육감이고 자네는 일하는 교육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황 교장은 2003년 부교육감 퇴임을 앞두고 국가에 보답하고 많은 사람에게 받았던 도움을 갚는 방법을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교육은 먼 장래를 보고 큰 계획을 세우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지만 정부가 임기 내 성과를 내기 위해 깜짝 정책을 추진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학생 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사회는 초등학생이나 고등학생 때에 비해 무관심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과 사회에서 인성을 키웠다는 말이 있었지만 현 사회는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인성은 사각지대, 학교는 졸업장을 따는 곳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황 교장은 새로운 중학교 교육을 하고 싶어 2003년 3월 용정중을 개교했다. 명칭을 용정(龍井)중으로 한 것은 학교가 자리한 곳이 보성군 미력면 용정(龍亭)리라는 점도 있었지만 윤동주 시인 등을 배출한 민족학교인 중국 옌볜의 용정중 같은 배움터가 되라는 바람 때문이었다.

용정중은 교육 과정 운영, 교과서 사용, 학생 선발 등에 자율성을 갖는 특성화학교다. 학생들은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휴대전화·인터넷·TV 사용이 금지되고 과자 등 군것질도 할 수 없다. 용정중은 여타 자율학교와 달리 강조되는 키워드가 꿈과 자율성, 책임감이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학생들에게 ‘꿈은 뭐냐. 죽기 살기로 해 본 적이 있냐?’고 자주 묻는다. 또 ‘꿈은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확신도 심어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인사법은 물론이고 식사예절 등 인성을 배우고 젓가락질 훈련도 한다. 스스로 하루 학업계획서부터 1년 학업계획서까지 세워 실천하도록 하고 45세가 됐을 때 어떤 사람이 돼 살고 있을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미래이력서도 쓴다. 학생들은 3년 동안 완벽한 복습과 예습, 철저한 시간관리, 일이 우선이라는 공부 등 세 가지 습관을 길러 졸업한다.

올바른 습관 기르기는 수업 이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용정중은 한 달에 두 번씩 교사 6명이 학생 1명의 수업시간에 공부하는 습관을 지켜보고 인터뷰를 한다. 또 1∼3학년 선후배가 형제자매 관계를 맺어 모든 것을 챙겨주는 끈끈한 정을 유지한다. 학생들은 지리산 종주, 남도순례 등 다양한 체험과 국선도, 축구, 씨름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담대해진다. 악기도 하나씩 배워 감수성을 키운다.

황 교장은 ‘물건은 반품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반품할 수 없다’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어떤 학교와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교사들은 예술가처럼 학생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데 열정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생하는 교직원들에게 제대로 복지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돈보다 올바른 생활습관인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화를 많이 나누십시오.”

황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말하는 교육 비법이다. 그는 부모가 자식에게 초등학생 때는 훈계하면 따를 만큼 확신을 준 다음 중학생 때는 잘못한 것을 야단칠 수 있는 형제, 고등학생일 때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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