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진입 알려주는 무전기도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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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정비근로자 스크린도어 참사

“무전기 한 대만 있었으면….”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정비하던 외주업체 직원 김모 씨(19)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해당 분야 직원들은 “분명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외주업체 직원들은 “아무 통신장비 없이 승객들이 보는 전광판 안내에만 의지해 작업했다”며 “열차가 들어오는 신호를 놓칠지도 몰라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안전관리 등 기술 분야에서만 30종이 넘는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하지만 단순 순찰 업무를 하는 공익요원이 소지하는 무전기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안전에 무방비 상태였다.

○ 외주업체 의존한 서울메트로, 현장 ‘감감’

31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2008년 서울시의 산하기관 비용 절감 정책에 따라 직원 수를 감축하면서 외주 업무가 크게 늘어났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비롯해 안전과 직결된 전동차 일일검사, 신호설비 유지보수 등 기술 분야 업무가 줄줄이 외부 인력의 손에 맡겨졌다.

외주업체는 대부분 서울메트로 직원들이 퇴직 후 들어간 곳이다. 2011년 설립되자마자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용역을 따낸 은성PSD(피해자 소속 업체)는 전체 임직원 143명 중 서울메트로 출신이 58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공사(公社) 퇴직 전 임금의 최대 80%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자체 선발한 나머지 현장 직원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높은 이직률을 보였다. 서울메트로의 한 직원은 “현장에 나오는 외주업체 직원들이 워낙 자주 바뀌어 전문성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안전까지 보장받지 못했다. 이번 사고의 경우 구의역 고장 신고 직후 을지로4가역에서 또 다른 고장 신고가 들어와 2인 1조 규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 ‘장애 발생 1시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용역계약 조건을 지키기 위해 동료가 을지로4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외주업체 직원의 안전은 본사 직원이 담당해야 하지만 서울도시철도공사와의 통합이 무산되고 사장이 물러난 뒤 대행 체제에서 직원들의 기강 해이가 심해지면서 제대로 관리를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유족들 오열…박 시장 “외주화 전면 개선”

사고 발생 나흘째인 이날도 구의역 현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끼니를 제대로 못 챙겨 컵라면을 가방에 넣어뒀던 피해자의 딱한 사정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안전 불감증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피해자 어머니는 이날 구의역 구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는 “내가 ‘회사 가면 상사가 지시하는 대로 책임감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책임감 강하고 지시 잘 따르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인데 애를 그렇게 키운 게 미칠 듯이 후회된다”며 오열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오전 현장을 찾아 “시(市) 산하기관 외주화 실태를 전면 개선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특히 지하철 안전과 관련한 업무는 외주를 근본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주업체와 장기 계약이 체결된 상황이고 대규모 인력 확충 등이 없는 자회사 설립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장선희 기자·김민 기자
#지하철#정비근로자#스크린도어 참사#구의역#서울지하철 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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