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사랑~”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축가 ‘임을 위한 행진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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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왼쪽)은 19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박기순이 들풀야학으로 이끈 윤상원(오른쪽)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했다.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영혼 결혼식을 치른 두 사람의 유해는 1997년 5·18민주묘지로 옮겨지면서 합장됐다.
박기순(왼쪽)은 19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박기순이 들풀야학으로 이끈 윤상원(오른쪽)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했다.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영혼 결혼식을 치른 두 사람의 유해는 1997년 5·18민주묘지로 옮겨지면서 합장됐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 36돌 기념식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때문인지 이 노래의 주인공인 윤상원·박기순 씨의 합동묘가 있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도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5·18 광주’를 상징하는 윤상원·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윤상원은 1980년 5월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 27일 새벽 계엄군에 총탄에 맞아 숨졌다. 서른살에 ¤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당시 국내 언론이 눈감고 있을 때 광주의 학살극 현장이 외신을 탄 데는 시민군 대변인이던 그의 역할이 컸다. 미국 일간지 ‘볼티모어 선’ 마틴 브래들리 기자는 그해 5월 28일자 기사에서 26일 밤 마지막 그의 모습을 인상 깊게 묘사했다. 윤상원은 계엄군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총을 달라는 고등학생들에게 “우리들이 싸울 테니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들은 역사의 증인이 돼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브래들리 기자는 당시 기사에서 “세계 어느 무장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진정한 투사의 진면목을 보았다”고 적었다.

윤상원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은행원이 됐으나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광주 광천공단 야학인 ‘들불야학’에 참여하면서 여덟살 아래인 박기순을 만났다. 전남대 사범대 국사교육학과에 다니던 박기순은 1978년 6·29 교육지표시위사건으로 강제 휴학을 당한 뒤 지역 노동운동의 토대를 닦겠다며 공단에 위장 취업해 들불야학을 연 당찬 여학생이었다. 야학 창립 멤버였던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는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박기순은 1978년 12월 연탄가스 중독으로 스물 셋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뜬다. 당시 윤상원은 일기장에 “불꽃처럼 살다 간 누이여…아무리 쳐다보아도 넌 아직 살아 있을 뿐이다…”라며 애끓는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다.

5·18 당시 살아남은 후배들과 유족들은 2년 뒤 민주화를 향한 두 사람의 애타는 마음을 기리고자 혼례의 예식을 마련했다. 이때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굿 ‘넋풀이’가 만들어졌고, 그 마지막 소품에 소설가 황석영 씨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옥중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노랫말을 붙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렇게 탄생했고 1980년대 이후 민주화현장에 항상 있었다.

1982년 2월 영혼결혼식을 통해 ‘천상의 부부’가 된 이들의 유해는 1997년 5월 8일 성역화 사업으로 새 단장한 국립 5·18묘지 2묘역으로 옮겨져 합장됐다. 희생자의 합장을 허용하는 묘지 조례와 안장기준이이 마련됨에 따라 15년 만에 영혼이 함께 쉴 수 있게 됐다. 5·18 옛 묘역에 있는 묘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던 가족들은 이들 부부가 이승에서 못다 한 얘기와 사랑을 나누며 영원히 안식하기를 빌었다.

5·18민주화운동 36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5·18민주묘지를 방문한 많은 참배객이 윤상원·박기순 합동묘로 발걸음을 옮겼다.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장이 무산되면서 유난히 윤상원·박기순 합동묘를 찾아 참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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