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초중고교 수행평가 지침, 개선방안 없이 효과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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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모 씨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수행평가 과정을 지켜보며 충격을 받았다. 과제는 ‘우주에서 하고 싶은 일 그려보기’였다. 아들과 함께 우주인이 우주공간에 떠 있는 그림을 그려 제출했다. 며칠 뒤 학교를 방문해 확인한 다른 아이들의 수행평가 그림엔 갖가지 행성과 유성의 궤도, 미국의 최신 우주선, 외국의 한 무기업체가 개발한 로켓 등이 전문가 수준으로 그려져 있었다. 아들의 그림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한 학부모는 김 씨에게 “몇몇 엄마들이 미술학원에 부탁해 맞춤형으로 그려줬다더라”고 귀뜸했다.

‘엄마 평가’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초중고교 수행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에 이 같은 방식의 수행평가는 자제하라고 최근 지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선방안 없이 추상적인 문구뿐이라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 ‘2016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을 내려보냈다. 올해는 ‘수행평가는 과제형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학교교육활동 내에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문장이 추가됐다. 과제형 평가란 학생과 교사가 학교에서 함께 하는 ‘수업 과정형 평가’와 달리 집에서 해오도록 하는 숙제 방식의 평가를 말한다. 교육부는 올해부터는 학교생활기록 작성지침을 바꿔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지필평가를 모두 수행평가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학부모를 중심으로 “어차피 부모가 대부분 해줘야 한다”며 “학부모 부담이 크게 늘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문제는 교육부가 내려 보낸 기재요령에 해당 문구 외에는 아무런 세부 가이드라인이나 개선방안이 없다는 점. 과제형 평가 비율을 제한한 것도 아니고, 이를 금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선 교사들은 얼마든지 이전처럼 과제를 낼 수 있다. 서울의 한 초교 교사는 “지필시험을 수행평가로 제대로 바꾸려면 수업시간 연장, 교재개발, 평가방식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며 “교사들도 궁여지책으로 과제형식의 수행평가를 일부 내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은택 기자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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