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 검찰 알고도 늑장 수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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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5월 3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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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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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태’ 최다 피해자를 낸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폐손상 괴질'의 원인이 살균제라는 게 밝혀진 지 5년 만에 공개적인 사과와 피해보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에서는 옥시 영국 본사의 책임을 물으며 본사 이사진 8명을 고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황정화 변호사는 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태 공식 피해자 외에 정부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만 1000여 명에 달하며, 그중 옥시 제품 피해자가 80%에 이른다고 밝혔다.

옥시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정부가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는 1·2등급 피해자에 대해서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태 이후 5년 만의 첫 공식 사과였다. 이에 대해 황 변호사는 “상황과 여론에 떠밀려서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고 꼬집었다.

황 변호사는 검찰의 늑장 대응도 지적했다. 초기에 형사고발을 했지만 ‘공식적인 조사와 판정이 나지 않아서 실제로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원인 모를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인정한 후에도 수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지난해 말에야 제조판매사 기업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진행했다고 황 변호사는 지적했다.

이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에서는 영국 본사의 8명 이사진을 살인·살인교사·증거은닉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옥시의 한국법인 임직원들은 이미 고발이 돼 있는 상태다.

황 변호사는 “영국 본사가 지금 옥시를 100%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영업 이윤도 사실은 100% 거의 다 챙겨가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면 이 제품의 제조나 판매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제품이 만들어진 때가 영국 본사가 옥시를 인수한 2001년 이전이어서 영국 본사는 책임이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2011년에 수거명령을 내릴 때까지 독성물질이 들어가 있는 살균제가 10년 이상 계속 제조·판매돼 왔다”며 “이 과정에서 제품의 유해성을 인지했다면 판매중단 조치를 취하든가 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다는 부분을 밝혀낸다면 옥시 본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고발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사망이나 혹은 신체상 어떤 위해가 가해질 수도 있지만 할 수 없다’라고 감수하는 조항이 발견된다면 살인이나 살인교사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는 유럽연합에서 1998년부터 적용하고 있는 바이오사이드(Biocide·살생물제) 안전관리제도를 왜 한국에는 적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바이오사이드 성분을 제품에 사용하려면 사전에 안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안전 입증의 책임은 제품 개발자에게 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이나 모기업의 안전 규제가 개발도상국의 다국적 기업, 자기업에는 적용되지 않거나 느슨하게 적용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변호사는 “유럽에서였다면 안전인증 과정에 의해서 팔지 못했을 텐데, 한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으니까 팔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며 영국 본사의 형사책임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유해성을 알았다면 한국에서도 판매하지 않아야 하는데, 알면서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팔았다면 범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어 황 변호사는 살균제 성분 중 특정 화학물질만이 아닌 다른 화학물질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폐 손상만이 아닌 신체 다른 부위의 피해까지 철저히 재조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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