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어린이집 보내기, 맞벌이 부부 아니면 꿈도 못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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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현지에서 본 ‘맞춤형 보육’

0∼5세 어린이 86명이 다니는 일본 도쿄 신주쿠 구 한 어린이집. 면적은 정원을 포함해 890㎡, 교사 수는 14명이다. 이케가야 에미코 원장은 “한국을 포함해 외국 출신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다문화 어린이집’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도쿄=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0∼5세 어린이 86명이 다니는 일본 도쿄 신주쿠 구 한 어린이집. 면적은 정원을 포함해 890㎡, 교사 수는 14명이다. 이케가야 에미코 원장은 “한국을 포함해 외국 출신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다문화 어린이집’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도쿄=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일본 도쿄의 신주쿠 구에 사는 워킹맘 김수현 씨(37). 지난해 2월 말 어린이집에서 둘째의 ‘입소 통지’를 받고는 너무 기뻐 만세를 부르고 파티를 열었다. 일본에선 4월에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모두 새 학기가 시작된다. 어린이집 입소 여부는 2월 말에 결정돼 학부모에게 연락이 간다. 이때 ‘입소 통지’를 받은 부모는 환호성을 지르지만, 받지 못한 부모는 앞으로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보육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한국과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에선 어린이집의 숫자가 부족해 워킹맘의 자녀도 입소하기 어렵다. 올해 도쿄에서만 어린이집 입소 대기 아동이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은 2013년 무상보육이 실시된 후 어린이집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맞벌이 부부뿐 아니라 전업주부도 일정 시간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게 됐다. 이제 한국의 보육 수준이 일본을 앞지른 걸까?

○ 부족해도, 맡기면 만족도 높은 日

현재 맞벌이 부부의 보육 문제는 일본 내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다. 3월 말 도쿄에서 만난 워킹맘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 살배기 딸을 두고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도모코 씨(30)는 “일본에서는 아이를 낳은 후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많다”며 “어린이집 수가 초등학교만큼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취학 전 아동을 위한 시설은 크게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나뉜다. 어린이집은 공립과 민간이 반반 비율로 설립하고 있다. 민간일 경우에도 사회복지법인이 주로 세운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고 설립 기준이 까다로워 우리나라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가정 어린이집이 생겨나기 어렵다. 일본에서 어린이집이 부족한 이유다.

어린이집 입소 여부는 철저하게 점수로 결정되는데, 맞벌이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신주쿠 구에선 부모 모두 주 40시간 노동을 할 경우 각각 20점이 부여된다. 파트타임 근무는 점수가 조금씩 낮아진다. 여기에 부모의 양육 상황에 따라 가산점이 붙는다. 1점 차로 입소가 결정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집이 당연히 맞벌이 부부와 자녀를 위한 곳으로 인식된다. 전업주부는 보통 자녀가 0∼2세일 때는 직접 양육하고 3세 이후엔 유치원에 보낸다.

일본 어린이집은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입소 이후의 생활에 대한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우선 우리나라처럼 무상은 아니지만 비용이 저렴하다. 이용료는 소득에 따라 다른데, 보통 종일반 기준 월 2만∼3만 엔(약 20만∼30만 원) 수준이다. 운영시간은 보통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추가 비용을 내면 오래 맡길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부모는 별로 없다. 오히려 파트타임 근무로 일이 일찍 끝나면 더 빨리 아이를 데리러 간다.

○ 필요한 사람에게 맞는 지원해야

도쿄의 워킹맘 학부모들은 “임신했을 때부터 어린이집 입소를 고민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입소 전엔 지옥, 입소 후엔 천국인 상황을 반드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출산한 1, 3세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시간제로 회사를 다니는 백지혜 씨(37)는 “일본 어린이집의 가장 큰 강점은 신뢰인데, 한국처럼 쉽게 세울 수 있게 되면 (보육의 질이 낮아져) 그 신뢰가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딸(2)을 기르며 현재 임신 중인 이라이 씨(39)는 “0∼2세는 엄마가 키우는 게 가장 좋지만, 맞벌이라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라며 “(한국처럼) 누구나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도 “워킹맘이 마음 편하게 원하는 시간만큼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면 어린이집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도 7월부터 아동(0∼2세)의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가구 특성이나 양육 환경에 따라 종일반(12시간)과 맞춤반(7시간)으로 구분하는 ‘맞춤형 보육’을 시작한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반별 자격 기준과 신청 방법 등의 지침을 마련 중이다. 정충현 복지부 보육정책관은 “맞춤형 보육의 도입으로 인해 맞벌이 부부를 포함해 각자 다른 상황에 놓인 부모와 자녀가 필요한 만큼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쿄=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일본#어린이집#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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