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뒤 진료비, 유족이 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대법 “인공호흡기 떼도 실제 사망까지 투약비 등은 환자측 부담”

연명의료를 중단하고서 환자가 일정 기간 생존해 있다가 사망하기까지 영양 공급에 들어간 비용이나 병실료 등 부대 진료비는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환자와 의료진 간에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정한 방법 이외의 의료행위로 발생한 진료비는 환자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는 기준을 명확히 세운 대법원의 첫 판례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8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첫 인위적 연명의료 중단 판결을 받은 김모 할머니(사망 당시 78세)의 유족을 상대로 낸 진료비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유족이 8643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의료계약은 판결에서 중단을 명령한 연명의료(인공호흡기 제거)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유효하게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연명의료 중단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의 인공호흡기 유지 비용과 호흡기 제거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발생한 상급병실 사용료 등 진료비를 지급해야 한다.

2008년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할머니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평소 할머니의 뜻에 따라 법원에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같은 해 11월 1심 재판부는 연명의료 중단을 인정했지만 병원 측은 불복해 항소했다. 2009년 6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뒤에야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호흡기를 뗀 이후에도 자발호흡으로 6개월간 더 생존하다가 201일 만인 2010년 1월 숨졌다. 병원은 김 할머니에 대한 진료가 시작된 2008년 2월부터 할머니가 숨진 2010년 1월 10일까지 발생한 진료비 8710여만 원 중 미납금 8690여만 원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김 할머니와 병원 사이에 의료계약이 해지된 시점이 언제인지였다. 1심은 “연명의료 중단 1심 판결이 병원에 송달된 때부터 의료계약은 해지됐으니 그 이후에 발생한 의료비는 유족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2009년 6월 대법원 확정 판결일을 해지 시점으로 봐야 한다”며 “병원이 중단해야 할 진료행위는 인공호흡기 부착에만 한정된다”고 밝혔다. 영양수액 공급, 항생제 투여 등 최소한의 생명 유지에 든 진료비와 병실 사용료는 의료계약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환자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은 2018년부터 시행되는 ‘웰다잉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적용하는 현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웰다잉법에는 환자 가족과 의사가 상의해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종류를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임종기 환자가 최소한의 연명의료를 거부하며 진료비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이번 판결은 ‘누가 진료비를 내야 하는지’보다 ‘중단해야 할 연명의료의 범위를 어디까지, 어떻게 정해야 할지’ 판단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조건희 기자
#연명의료#진료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