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광애]차라리 지하철 노인석을 없애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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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 푸는 ‘노인의 품격’]

고광애 노년문제 저술가
고광애 노년문제 저술가
21, 22일 이틀간 동아일보의 ‘세대갈등 푸는 노인의 품격’ 기획 시리즈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정도였나’ 하는 마음이었다. 생생한 현장 취재기사는 동년배 노인인 나를 심란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2000년부터 책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올 5월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까지 노년 관련 책 5권을 쓰고 여기저기서 글과 말로 역설했던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다.

내 주장은 한 가지였다. ‘우리 노년은 살아왔던 시대를 뒤로하고 새 시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새로 이민 온 사람처럼 모든 것을 시대에 맞춰 바꾸고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

기사에서 지하철 1호선 풍경이 펼쳐졌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노인석이 비어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나와 언니는 지하철에 타면 늘 문 옆에 서 있어야 했다. 어쩌다 앉아 볼 때도 있었다. 앉으면 무얼 하나. 다음 역에서 늙었음을 코에 건 듯한 남자 노인이 우리 앞에 위협적인 태도로 섰다. 날 보고 일어나라고 명령하는 남성 노인도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앉아 있을 수 있지만 언니는 전전긍긍했다.

낮에는 일반석이 더러 비어 있다. 모처럼 빈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젊은이가 앞에 서면 언니는 마치 젊은이의 권리라도 뺏은 듯 미안해한다. 앉아 있는 젊은이 앞에 서도 ‘너 노친네한테 자리 양보 안 할 거냐’고 말없이 유세 떠는 것 같아 싫단다. 이러니 언니는 늘 출입문 옆에 선다.

모든 노인이 언니처럼 ‘매너 노인’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 자리 양보 문제로 폭력까지 발생하고 처벌받는 상황이 일어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노인 세대 심층 인터뷰 기사에서 “줄 서기처럼 서양식 교육을 따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빨리빨리 근성이 남아 있다” 등의 변명도 성립될 수 없다. 우린 유치원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 이미 줄 서기와 양보하기, 조용히 말하기 등을 다 배웠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대 갈등을 감안할 때 이제 세대 간 교류가 끊긴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 미래 학자 피터 피터슨은 노인석이 일반석으로, 일반석이 노인석으로 바뀐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고령 인구의 증가 추이를 보면 이 방안도 효과가 별로일 것이다. 노인석과 일반석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면 노소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고, 세대 단절의 계기도 줄어들지 않을까.

젊은 세대에게 아직 할 말이 없다. 우리 노년이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살게 됐을 그때가 돼야 몇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광애 노년문제 저술가(78)
#세대갈등#노인#지하철#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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