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48억 장비소송 첩보작전 방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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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 비서-운전사 바꾸고 도청 체크
조직내 양대 파벌 사업발주 등 충돌… 회의록 유출에 특단조치끝 2심 승리

고윤화 기상청장은 올해 초 비서와 운전사 등 자신과 접촉이 많은 직원 4명을 교체했다. 회의나 면담 내용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사무실 내에서는 말을 줄였고, 심지어 도청 여부까지 살펴봤다.

고 청장이 특히 보안에 신경을 쓴 분야는 민간업체와 법정싸움을 벌여온 48억 원대 기상장비 ‘라이다(LIDAR) 사건’. 이와 관련된 내부회의 자료가 이해 관계자들에게 넘어가는가 하면 회의 내용은 물론이고 자잘한 자신의 말까지 속속 외부에 유출됐기 때문이다. 고 청장의 이런 행동은 지난달 30일 이 사건에 대해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낼 때까지 계속됐다. 지난해 5월 1심에서는 기상청이 패소했다. 고 청장은 “물밑에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건 전말은 물론이고 기상업계의 특성을 모두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데는 장비의 기술적인 내용과 이면계약 등으로 꼬여 버린 계약관계는 물론이고 기상청 내 S대와 Y대 파벌 간의 고질적인 싸움이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기상산업의 개발 초기 단계에 관련 학과를 운영하던 주요 대학이 이 두 곳밖에 없다 보니 일찌감치 조직이 양분돼 이전투구를 벌였다는 것이다. 기상청 내 5급 이상 승진 인사 중 40%가 Y대와 S대 출신이라는 통계도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날씨 예보가 연달아 틀렸을 때조차 과학적 근거를 문제 삼기보다 ‘파벌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식의 상호 비방전이 벌어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기상청 내부에서는 이런 고질적인 갈등 때문에 장비 발주나 사업자 선정 입찰이 진행될 때마다 “특정 라인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한다. 또 소수 민간업체가 기상청 내부는 물론이고 검찰과 정치권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수군거림도 끊이지 않았다. 한 직원은 “정기인사를 앞두고 민간 기상업체 쪽에서 ‘힘 써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며 “외부에서 기상청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이 정도인가 싶어서 놀랐다”고 털어놨다.

기상청 내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기상청과 민간업체들의 유착관계 속에서 사업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개발하려는 노력보다는 인맥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전했다. 기상청 고위 관계자는 “뿌리 깊은 파벌 간 갈등을 비롯해 기상청 내부에 쌓여 있는 문제들을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기상청은 내부적으로 방만 운영과 부실한 내용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차세대 도시·농림 융합스마트 기상서비스 개발 사업단’을 본격적으로 점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도농사업단’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2019년까지 1000억 원이 투입되는 기상청의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기상청#장비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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