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운 남편’의 이혼 청구 첫 허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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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주의 예외 대법판결’ 적용
법원 “25년 별거로 혼인실체 사라져… 경제지원 계속해온 점도 고려”

혼인 파탄의 책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진 경우 유책 배우자(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적용한 첫 이혼 판결이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혼외자를 낳고 25년간 별거하는 등 사실상 중혼(重婚) 상태였던 A 씨(75)가 제기한 이혼 소송에서 1심을 파기하고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1일 밝혔다.

1970년 결혼한 A 씨와 부인 B 씨(65)는 다툼이 잦았다. 두 사람은 1980년 협의이혼을 했다. 그러나 B 씨는 어린 자녀들을 위해 2년간 집에 머물렀다. 3년 뒤 두 사람은 다시 혼인신고를 했지만 A 씨는 곧바로 다른 여성과 동거했다. 2년의 동거 생활을 청산한 뒤 또다시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해 동거녀가 혼외자를 출산할 무렵 A 씨는 B 씨를 상대로 “도장을 도용당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가 이뤄졌다”며 혼인 무효확인 소송과 이혼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이후 25년간 동거녀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A 씨는 B 씨와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장남 결혼식 때 한 차례 만났을 뿐 다른 두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2013년 A 씨는 다시 이혼 소송을 냈지만 1심 재판부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자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사라졌고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며 1심을 뒤집고 이혼을 허용했다. 재판부는 9월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유책주의(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제시한 조건을 근거로 적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혼인 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거나, 시간이 흘러 책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졌을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A 씨가 그간 자녀들에게 학비, 용돈, 전세자금 등 수억 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왔다”며 “세월이 많이 흘러 A 씨의 유책성도 상당히 약화됐고, 부인이 이혼을 거절하고는 있지만 외형상의 법률혼 관계만을 형식적으로 계속 유지하려는 것 같아 이혼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유책주의#대법#이혼#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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