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도 ‘물 수능’ 예고… 상위권 수험생들 ‘수시납치’ 골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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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원서접수 앞두고 ‘묘수 찾기’

대입 수시모집이 내달 시작되는 가운데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지난해처럼 또다시 ‘수시 납치’ 우려가 퍼지고 있다. 정부의 ‘쉬운 수능’ 정책 때문에 자신의 수능 등급을 예견하기 어려워진 수험생들은 수시 납치 우려를 감수하고 대학에 하향 지원을 해야 할지, 평소 실력대로 지원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사진은 이달 열린 대입 수시 모집 설명회 현장. 동아일보DB
대입 수시모집이 내달 시작되는 가운데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지난해처럼 또다시 ‘수시 납치’ 우려가 퍼지고 있다. 정부의 ‘쉬운 수능’ 정책 때문에 자신의 수능 등급을 예견하기 어려워진 수험생들은 수시 납치 우려를 감수하고 대학에 하향 지원을 해야 할지, 평소 실력대로 지원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사진은 이달 열린 대입 수시 모집 설명회 현장. 동아일보DB
2016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 기간(9월 9∼15일)이 임박하면서 수험생들 사이에서 속칭 ‘수시 납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도 지난해처럼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예고함에 따라 수험생들이 본인의 수능 등급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시 납치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전에 지원해 놓은 수시모집 대학과 비교할 때 실제 수능을 치르고 나서 보니 정시모집에서 더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고도 수시에 합격해 버리는 상황을 말하는 은어. 수능 성적이 잘나올수록 가고 싶지 않은 대학에 ‘납치 되듯’ 입학해야 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특히 상위권 수험생들은 6곳까지 지원할 수 있는 수시모집에서 일부 대학에 하향지원을 해 합격했다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든 경우를 가장 곤혹스러워한다. 대학 전형 일정이 제각기 달라 일부 대학이 전형 일정을 교묘하게 활용해 수시 합격을 포기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대학들이 ‘고교 생활에 충실하고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한다’는 수시의 취지를 저버리고 암암리에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골라 뽑는다는 의혹도 수험생 사이에서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에 따라 최근 수험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와 카페를 중심으로 수시 납치 관련 글이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대입에서 벌어진 수시 납치 의심 사례를 공유하며 내달 수시에서 상향지원을 할지, 하향지원을 할지 서로 확인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수능에서 만점을 받아놓고도 수시 때문에 일명 ‘스카이(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대학 진학에 실패한 사례, 수능에서 총 3문제를 틀려 최상위 성적을 받고서도 수시에 합격해 모 사립대 지방캠퍼스에 입학한 사례들은 수험생들의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수시 납치를 경험한 대학 재학생들은 후배들에게 ‘경고성 조언’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한 학생은 “대학 1학기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못 잡겠다. 추가합격이 수시 납치로 이어졌는데 2학기 개강이 다가오면서 재수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는 글을 남겼다.

수험생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발 빠른 사교육업체들은 비공식적으로 ‘수시 납치를 유발하는 대입 전형’을 정리해 뿌리고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한 사교육 업체의 ‘수시 납치 유발 대학 리스트’에는 서울지역 몇몇 사립대와 대입전형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며 왜 위험한지도 설명하고 있었다.

A사립대는 수시에서 서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면접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 합격자 발표 날짜가 수능 성적 통지일(12월 2일) 이후라는 점 때문에 조심해야 할 대학으로 거론됐다. 면접이 있으면 면접에 불참하는 방법으로 합격을 포기할 수 있지만 면접이 없으면 합격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합격자를 수능 성적 발표 이후에 확정한다는 점도 ‘수능 성적으로 수시를 뽑는다’는 의혹을 사는 요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대학들은 수험생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수시 납치’가 불가능한 구조로 일정을 잡기도 했다. 서강대(학생부종합전형 자기주도형)는 올해 수능 성적 통지일 전인 11월 13일 합격자 발표를 잡아 ‘대학이 수능 성적을 열람한 뒤 수시 합격자를 고른다’는 의심을 벗었다. 서강대는 다른 전형(학생부종합전형 일반형)에서도 수시에 지원한 수험생들에게 합격을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줬다.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입력 날짜를 수능 다음 날(11월 13일)로 잡음으로써 가채점 결과 성적이 좋은 수험생은 이 서류들을 입력하지 않는 방법으로 합격을 포기하고 정시에 지원할 수 있다.

수시 납치 문제의 해법은 결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쥐고 있다. 대학은 평가원으로부터 수능 성적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올해 취임한 김영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대학이 성적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이전처럼 수능 점수를 다 제공할지, 과목별 등급을 제공할지, 아니면 최저기준 충족 여부를 ‘합격/불합격’식으로 알려줄지 등 가능성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시 납치 논란이 결국 수험생 본인의 결정에 따른 책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재수를 준비하는 수험생 김예지 씨(20)는 “수험생이 자기 실력을 못 믿고 하향지원을 해서 원하지 않는 대학에 합격했다면 결국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물 수능#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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