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동기 빼니 맡길 판사 없어… 피고인이 ‘재판부 쇼핑’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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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연고-전관예우 타파”… 재판부 재배당 시행해보니

이달 1일부터 시행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의 ‘재판부와 연고 있는 변호사 선임 사건 재배당’ 방침을 놓고 법원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이 방침에 따라 재판부와 고교 및 대학(원) 동문, 사법연수원(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직장 근무 경력자인 변호인이 선임된 사건이 배당되면 해당 재판부 요청에 따라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이 이뤄진다. 연고주의와 전관예우를 타파하기 위한 법원의 움직임에 환영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법원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 고교 동문 피하니 대학 동기가 재판장?

1일 이후 이 원칙이 적용돼 재배당된 사건은 18일 현재 모두 5건. 이 중 4건이 부패사건 전담 재판부 3곳(21, 22, 23부)에서 나왔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현용선) 심리로 재판이 열린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62)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군 해상작전 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전 처장 사건은 당초 형사합의21부에 배당됐으나, 김 전 처장의 변호인 중 법무법인 KCL의 최종길 변호사(51·사법연수원 21기)가 재판장인 엄상필 부장판사와 경남 진주 동명고 선후배 관계여서 23부로 재배당됐다. 10명으로 구성됐던 김 전 처장의 변호인단은 줄줄이 사임했다. 법원은 직권으로 국선변호인 선임을 결정했지만 결국 법무법인 광장에서 김 전 처장의 변호를 새로 맡게 됐다.

문제는 한 차례 재배당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최근 형사합의21부에서 재배당을 요청한 사건 중 2건은 변호인이 차순위 재판부인 형사합의22부의 재판장인 장준현 부장판사와 서울대 법대 동기여서 22부를 건너뛰고 23부로 재배당됐다. 또 경제사건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8부에서는 재판장과 고려대 법대 동기인 변호사 수임 사건을 재배당하려다가 차순위 재판부인 24부 재판장과 변호인이 연수원 동기여서 25부로 재배당됐다. 거듭된 ‘재배당 복병’ 때문에 법원 일각에선 “이런 식으로 차 떼고 포 떼면 남는 재판부가 없을 것”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 입맛에 맞는 ‘재판부 쇼핑’ 우려도

“피고인 입장에서는 (이 방침을) 잘만 이용하면 ‘재판부 쇼핑’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재배당 원칙 시행에 앞서 법원 내부에서 가장 우려한 대목은 피고인들이 이 방침을 교묘하게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강성’ 재판장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장과 연고가 있는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재판부를 찾아 ‘기피-재배당’을 반복하며 시간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재배당이 되면 피고인이 재판부와 연고 있는 변호인을 다시 선임해도 재재배당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허점이 될 수 있다. 피고인이 재배당된 재판부를 겨냥해 ‘맞춤형 변호인’을 선임해도 법원이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피고인 구속 만기일도 있고 재판이 계속 공전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재판장이나 피고인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법이 전관예우 등 ‘연줄’ 재판의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방침인 만큼 다른 지방법원들도 확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서울지역 다른 법원의 한 판사는 “명분과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 확대 적용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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