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세부항목 없이 “행사에 지출” 신고… 서류만 본 뒤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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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기부금 관리]기부금단체 지정-감독도 부실

기부금단체들이 부실하게 운영되는 데는 단체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지정에서 지정 후 관리까지 대부분 서류상으로만 점검이 이뤄지는 것도 큰 이유다. 특히 각 단체가 국세청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지출 내용을 구체적인 세부 항목 없이 ‘행사’ ‘복지단체 지원’ 등으로만 간략히 적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 서류만으로 만사 OK

비영리단체가 지정기부금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업계획서와 정관을 해당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를 받은 부처는 자격 조건을 심사한 뒤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기획재정부에 지정기부금단체 추천서를 넘긴다. 기재부는 추천서, 법인등기, 정관, 사업계획서, 최근 2년간 결산서와 해당 연도 예산서 등을 검토한 뒤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한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대부분 현장 실사 없이 서류로만 이뤄진다는 점. 게다가 기부금단체로 지정되기 위해 필요한 자산, 규모, 회계 상태에 대한 규정도 없다. 단체의 회계 상태를 보기 위해 결산·예산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지만, 신설 법인의 경우 앞으로 ‘기부금을 얼마 모금하겠다’ 정도의 목표액과 사업계획만 첨부해도 된다.

또 최근 2년간의 결산서와 해당 연도 예산서도 제출하지만 영수증 같은 증빙서류 첨부 의무나 검증 과정이 없기 때문에 단체가 제출한 서류를 그대로 믿고 허가를 내주는 구조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정기부금단체 실사를 나간 적은 거의 없다”며 “이미 추천 부처에서 한 번 검토했다고 보기 때문에 서류가 미비한지, 홈페이지를 갖췄는지 정도를 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추천 부처의 말은 또 다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보통 추천 단계에서 현장 실사까지 나가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사후 점검은 더 허술

기부금단체로 지정된 이후 기부금 사용 등에 대한 관리감독은 소관 부처나 지자체, 국세청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인력 부족으로 실사는 고사하고 서류 검증조차 쉽지 않다. 기부금 사용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간단히 이름과 금액만 써서 제출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제 이 사업에 썼는지를 증명하는 영수증 등 증빙서류는 아예 제출받지 않는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기부금 전용 계좌에 대한 검증도 의무가 아니다.

국세청과 각 지정기부금단체 홈페이지에 등록해야 하는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도 허술하게 작성되고 있었다. 명세서에 지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고 ‘장학금 지급’, ‘복지단체 지원’ 등 간략하게 적고 있는 것. 이처럼 관리가 허술하다 보니 일부 단체의 경우 자체 홈페이지와 함께 모금 금액과 사용 내용을 게시해야 하는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 금액만 명기하고 아예 사용 내용을 적지 않는 곳도 있었다.

홈페이지 공시 의무를 지키지 않는 단체도 상당수다. 매년 모금액과 활용 실적을 자체 홈페이지와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하지만 현재 기재부 장관이 지정한 지정기부금단체 2900여 곳 중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 의무 내용을 올리지 않은 곳은 400곳이 넘는다.

○ 총괄기관에서 검증 강화해야

재지정을 받아야 하는 지정기부금단체는 2년마다 국세청과 소관 부처에 ‘지정기부금단체 의무 이행 여부 점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역시 해당 단체가 스스로 의무사항 이행 여부를 표시해 올리는 방식이라 검증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수입을 회원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사용하고,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일 것’이라는 항목에 ‘그렇다’고 적어 제출하면 끝이다. 소관 부처가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 하지만 기부금단체가 작성한 결산서와 비교하는 방식이라 사실상 검증이 되지 않는다. 이 결산서 또한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제출할 의무는 없다.

소관 부처에서 점검이 이뤄지지 않으니 국세청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전수조사가 어렵다면 표본조사를 통해 현장 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현재 현장 실사는 100만 원 이상 기부자의 0.5%만 뽑아서 조사한 뒤 비리 의혹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 기부금단체를 찾아 전용계좌와 증빙서류를 점검하는 형태로 1년에 한 번만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기부금단체의 지정부터 사후 관리감독까지 한 기관이 책임을 지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추천기관(정부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지정기관(기획재정부), 감독기관(국세청)이 서로 다른 구조에서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관리감독이 어렵기 때문이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부금단체를 관리하는 통합기관이 표준양식을 만들고 운영, 회계도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면 기부금단체를 추천할 때 소관 부처와 지자체의 검증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차 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 등 부처에서 지정기부금단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 지정기부금단체 관계자는 “기부금단체 입장에서도 차라리 관리감독이 강화되면 시민들이 기부금단체를 믿고 기부하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일부 기부금단체들의 비리 때문에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위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석 lhs@donga.com·이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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