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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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건전문가들이 “한국은 사스와 에볼라를 겪은 나라에서 드러난 근본적 실수들을 되풀이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사스 앞에 무너졌던 중국이나, 에볼라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투명성 부족, 부실한 질병 통제, 사회적 분열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미국의학협회(JAMA) 학술지에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교수팀이 밝힌 내용이다. 때때로 선진국 진입을 들먹이는 우리로서는 얼굴 들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다른 나라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세월호 사고 때와 비슷한 과오를 1년 뒤 되풀이한 것은 더 참담한 일이다.

그동안 메르스 환자 166명이 발생했다. 이 중 24명이 사망했고, 30명이 퇴원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어제 “메르스가 진정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주말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이번 주가 고비”라고 말하고 나서 1주일 뒤 2차, 3차 감염이 발생했다. 이달 들어 대통령, 총리대행 등이 매주 “이번 주가 고비”라고 말했지만 메르스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번번이 예상이 빗나간 것을 보면 속단은 금물이다.

메르스 극복을 막는 허술한 구멍은 여전하다. 빈틈 많은 병원 방역, 자가 격리자의 격리수칙 무시, 리더십 부재 같은 위험 요소들이다. 삼성서울병원에 이어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드러난 방역의 허점이 대표적이다. 잠재적인 슈퍼 전파자들을 우려해야 하는 점도 추가 환자 발생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려면 최대 잠복기의 두 배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신규 환자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메르스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경계를 늦춰선 안 될 것이다.

메르스는 효과적인 공중보건 전략으로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질병이다. 고스틴 교수팀에 따르면 한국 보건당국이 메르스 발생 초기에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이로 인해 대중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 큰 문제였다. 또 한국은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정보와 매뉴얼, 지휘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지적됐다. 좁게 보면 정부의 무능, 크게 보면 국가의 무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해할지 몰라도 이는 대통령의 무능으로 직결된다. 한국갤럽이 어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긍정적 평가는 취임 후 최저 수준인 29%로 떨어졌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가 끝나면 전 과정에 걸쳐 무엇이 잘못됐고 부족했는지를 철저히 복기해야 한다. “한국은 메르스를 겪고서도 배운 것이 없다”는 국제 사회의 손가락질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해 국가 시스템과 대비 태세를 바로잡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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