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아닌 진짜 사나이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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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6월의 주제는 ‘호국보훈’]<112>軍 폭력 대물림 고리 끊자

병영 내 폭력과 가혹 행위, 지속적인 무시와 따돌림 등은 ‘악마 같은’ 일부 사병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4월 형언하기 힘든 구타와 가혹 행위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을 숨지게 한 이모 병장도 이등병 시절 선임병의 폭언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부대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숙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은 16일 “가혹 행위 가담자와 상담하다 보면 가혹 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는 피해자가 계급이 올라가면서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군내 폭력의 대물림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군 고등군사법원은 4월 9일 윤 일병을 사망케 한 이 병장에게 징역 3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다른 가담자인 하모 병장, 이모 상병과 지모 상병에게는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국방부는 이처럼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엄정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군내 폭력과 왕따 문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 상담관은 “사병들은 군이라는 시설 안에서 통제 또는 억압을 받기 때문에 바깥 사회에서와 달리 개인에게 내재돼 있던 폭력성이나 취약성이 어느 순간에 더 쉽게 분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군 시스템이 ‘묻지 마’ 군대 폭력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폐쇄적인 병영 안에서 ‘군기 유지’라는 명분 아래 구타당하던 병사들은 구타가 당연하거나 필요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정병국 국회 병영문화혁신특위 위원장은 “같은 상황이라고 모두 구타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폭행으로 군기를 유지하는 구조 속에서는 폭력의 고리를 끊어 내는 ‘최초의 선인(善人)’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병영 문화 개선은 사회의 문제이고 국가의 문제라고 인식해 국가 차원의 교육 훈련 치료 시스템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 환경이 개선되고 있지만 나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일과 시간의 폐쇄적인 군대 환경이 병사들의 스트레스와 폭력성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스스로를 돌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이 상담관은 “입대 전부터 음악 감상이나 독서, 운동 등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 만큼 군 생활에서 위기를 인식했을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고 전문가의 도움과 상담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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