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암행어사’에 딱걸린 막말판사 “하필 제가 화낼때 오셔서…” 쩔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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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언행 컨설팅’ 3년째

“거기 앉아 계신 분, 누구시죠?”

서울중앙지법의 한 민사법정. 재판장이 방청석에 앉은 한 여성에게 질문을 건넸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하던 여성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판사님. 재판 모니터링 온 법정 언행 컨설턴트입니다.” 재판장은 ‘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당황한 표정으로 “왜 하필 제가 화낼 때 오셔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70(세) 넘어 소송하면 3년 못 넘기고 죽어요” “여자가 맞을 짓 했네” 등 재판 도중 법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사회적 물의를 빚자, 대법원은 2013년부터 지방법원 단위로 법정 언행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법정 언행 컨설턴트들은 이른바 ‘막말 판사’ ‘갑(甲)질 판사’를 찾아내기 위해 불시에 재판을 방청하는 법정 안 ‘암행어사’가 돼 재판장에게 일대일 맞춤 지도까지 하기도 한다.

법정 언행 컨설팅은 판사 1명당 크게 5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3시간 분량의 재판 영상 분석→재판 방청 모니터링→1차 면담→한 달 후 2차 모니터링→2차 면담’ 등이다. 영상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방청을 알리지 않고 참관해 문제점을 짚어 내는 게 핵심이다. 지금은 수도권과 대도시 지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대상은 법원에서 재량으로 결정한다.

재판이 진행되면 재판장을 중심으로 변호인, 소송인, 방청객, 증인 등이 얽히고설켜 수많은 갈등 상황이 생긴다. 법정 언행 컨설턴트들이 꼽는 판사들이 막말을 내뱉기 쉬운 상황은 언제일까. 변호인 또는 소송 당사자의 재판 준비가 미흡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법정 언행 컨설팅을 맡고 있는 조에스더 엘컴퍼니 대표는 “상습적으로 재판 당일에야 서면을 제출하는 변호인 또는 당사자에게는 ‘왜 그렇게 준비를 안 해 갖고 와요? 자기 재판 자기가 챙겨야지’ 같은 말이 나오기 쉽다”며 “부적절한 언행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런 언행이 나오는 전후 맥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 조절 능력이나 공감 능력 부족 등 판사 개인에 의해 법정 내 갈등이 촉진되거나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는 사례도 있다. “여기가 어딘데 신성한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느냐”며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만큼 열등감이 있거나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반면 한 컨설턴트는 “법정 내 소란이 발생해도 전혀 제지를 하지 않는 재판장도 있는데 이런 재판장을 면담해 보니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사람이 완벽할 수 없잖나’라고 하더라. 이는 완벽주의 때문에 법정의 권위를 올바르게 세우지 못한 사례”라고 전하기도 했다.

법정 언행 컨설턴트들은 바람직한 법정 언행이 정착되기 위해 판사들의 교차 방청을 권한다. 조 대표는 “평소 재판을 비교당해 보거나 평가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동료 법관들의 모범적인 소통 사례를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대 규모로 법정 언행 컨설팅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민사재판 담당 법관 전원을 대상으로 12개 팀으로 나눠 방청을 실시한 뒤 서로 의견을 공유했으며 이달에도 교차 방청을 진행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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