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첫 ‘파더스 데이’ 행사… 父女 100쌍 안산 자락길 거닐며 이야기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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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손잡고 데이트… 떨리네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파더스 데이’ 행사에서 댄스타임 도중 한 부녀가 다정하게 포옹하며 웃고 있다. 이화여대는 9일 재학생 100명의 아버지를 학교로 초대해 학교 뒷산 길을 부녀가 함께 산책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파더스 데이’ 행사에서 댄스타임 도중 한 부녀가 다정하게 포옹하며 웃고 있다. 이화여대는 9일 재학생 100명의 아버지를 학교로 초대해 학교 뒷산 길을 부녀가 함께 산책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머리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는 중년 남성들과 젊은 여성들이 춤을 추고 있다. ‘DOC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에 반 박자씩 어긋나는 엉거주춤한 춤사위를 보이던 중년 남성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막춤을 추는 중년 남성들 앞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9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 이화여대 교정 잔디밭에서 펼쳐진 풍경이다. 주말 오전 펼쳐진 이 어색한 ‘댄스타임’은 아버지를 학교로 초청해 딸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한 이화여대의 ‘파더스 데이(아버지의 날)’ 행사의 일환이다. 경남 하동군에서 온 여승현 씨(49)는 “오늘 함께하는 딸이 딸 셋 중 장녀인데 초등학교 이후로는 나들이도 한번 같이 다녀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안겨 보라고 사회자가 딸에게 주문하자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딸 선영 씨(19)도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행사가 있어 신선하다”면서도 “아직 아빠와의 포옹은 좀…”이라며 수줍어했다.

댄스타임이 끝나자 ‘딸 바보’ 아버지들과 이화여대 학생들은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녹음 속에서 2시간 30여 분 동안 산책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딸과 손잡는 게 처음이라는 아버지는 딸과 산책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곽인섭 씨(59)는 딸 현아 씨(20)가 학교 홈페이지를 보고 “행사에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다”고 졸라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34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2월 은퇴한 곽 씨는 “평생 일만 하며 살다가 이제 잠시 쉬는 시간인데 딸과는 정작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며 “골프 선약을 취소했는데 골프야 또 할 수 있는 거지만 이건 오늘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왔는데 만족스럽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현아 씨도 “기대한 것보다 아버지와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딸과 서먹함을 풀려고 참석한 한 아버지는 딸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김해수 씨(50)는 “매일 학교와 기숙사만 오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딸 서현 씨(20)에게 숲길을 나란히 걸으며 다정하게 연애 코치를 해줬다. 학교에서 나눠준 파란색 커플가방을 멘 이 부녀의 사이는 3월 딸의 교통사고 때문에 서먹해졌다. 서울의 재수학원에 입학한 후 딸을 경기 화성시의 집까지 일년간 매 주말 차로 데려오던 아버지가 3월 “나도 직장생활 하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너도 성인이니 이제 혼자 다녀라”고 말했다. 말을 한 바로 다음 주, 집으로 돌아오던 딸은 교통사고를 당해 물리치료를 받았다. 딸에게 그 일이 미안했던 아버지는 숲길을 거닐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화여대는 2월 ‘신입생 학부모 이화사랑 프로그램’을 올해 처음 열며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부모 340명 중 아버지가 69명이나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금요일 오전에 열린 행사에 ‘딸 바보’ 아버지들이 대거 몰린 것.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당시 행사에서 “아버지와 딸만을 위한 행사를 올해 안에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0일 시작된 참가 신청은 일주일 만에 부녀 100쌍이 신청을 해 조기 마감됐지만 참가를 원하는 아버지가 많아 신청 기간을 닷새 연장하기도 했다. 학교 관계자는 “단과대 행사에도 참석해 지도교수를 만나고 연락하는 아버지도 종종 있다”며 “딸의 성적이 기대보다 안 좋아 속상하다는 아버지에게 ‘나중에 소주 한잔 하시자’며 달랜 교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아버지는 대학 교수에서부터 회사원,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가족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아버지가 됐고 또 미디어를 통해 가정에 참여하는 남성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딸 바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딸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 서울로 온 연도흠 씨(54)는 “내 딸은 우리 세대가 겪은 것처럼 앞만 보고 가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딸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며 “행사가 끝나면 일 때문에 바로 베트남으로 가야 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김민 kimmin@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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