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이공계 잣대는 안될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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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들, ‘인문학 진흥 심포지엄’서 교육부에 쓴소리 쏟아내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인문학 살리기 심포지엄에 참석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인사말을 마친 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인문학 살리기 심포지엄에 참석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인사말을 마친 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의 발표를 듣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육상 선수에게 달리기를 요구해야지 홈런이나 스트라이크를 요구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인문학에 인문학이 아니라 취업을 요구합니다.”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인문학 진흥 방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는 국내 대학 인문학 교수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행사는 교육부가 고사(枯死)돼 가는 인문학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인문학 분야 교수, 전문가, 대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토론에 나선 교수들은 먼저 인문학을 경영학이나 공학 등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류병래 충남대 교수(언어학과)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기준으로 성공하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며 “교육부의 대학 평가가 주로 취업률이 얼마인지,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급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를 가지고 이뤄지기 때문에 인문계는 이공계에 밀릴 수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절실한 대학으로서는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인문학보다 취업이 잘되는 이공계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인문학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의 문제도 제기됐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과)는 “대학 진학 인구가 줄고 대학 구조조정이 화두가 되면서 인문학이 위태로운 처지가 됐다”며 중앙대를 언급했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 재단을 인수한 뒤 중앙대는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각 학문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학과를 폐지하는 ‘무한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인문대, 사회대 교수들은 “학문을 기업 경영 식으로 접근한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중앙대와 같은 구조조정은 인문대의 해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문학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든 취업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대학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인문, 사회, 교육, 공학, 자연, 의약, 예체능 중 인문계는 45.5%로 예체능계 다음으로 낮았다. 예체능계는 학문 특성상 취업 인원이 극소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문계가 사실상 꼴찌인 셈이다. 한호 아주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취업 연계성이 높은 전공 과목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하도록 권장하고 인문학과 디지털, 인문학과 문화산업을 묶는 융복합 전공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에는 인문학의 탓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유토론 시간에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는 “국가가 한정된 자원을 인문학에 투자하려면 인문학은 그 자원으로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황 장관이 “인문학 진흥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고 절대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인사말을 마치고 10여 분 뒤 토론장을 떠나자 한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도 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늘 있는 일이었으나 이날은 인문학계 인사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듯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토론자로 연단에 있던 류병래 교수는 “부총리가 후퇴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방금 나가셨다. 토론까지 듣고 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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