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총장]공학전공 62세 男교수 산학협력 날개달고 대세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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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 총장 全數분석… 공학 전공자 늘고 인문학 줄었다

《 지난 10년 새 한국 대학을 이끌어 나가는 총장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2005년과 2015년의 국내 4년제 대학 총장을 분석한 결과, 공학을 전공한 총장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농·축산학, 인문학, 법학 등을 전공한 총장은 10년 전에 비해 줄었다. 인문학보다 공학의 연구 성과가 각광받고 대학들이 산학협력에 힘쓰면서 나타난 변화다. 대학들이 공학계열을 육성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동아일보가 총장들의 전공, 나이, 전직(前職) 등을 들여다봤다.

‘62세-남성-공학 전공-교수.’ 현재 한국 대학을 이끄는 총장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동아일보는 2015년 3월 현재 국내 4년제 대학 202곳의 총장을 전수조사했다. 이 중 현재 4곳은 총장 공석이다. 나머지 198곳을 조사한 결과 총장들의 평균 나이는 62세, 성별은 남성이 압도적이었고 공학 전공 교수가 특히 많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소수였던 공학 출신 총장이 이제는 대세가 된 것이다. 》

○ 공학 전공한 총장 급부상

국내 대학 가운데에는 관례적으로 신부나 목사가 총장으로 취임하는 종교 관련 대학이 많은 탓에 신학이나 목회학을 전공한 총장(34명)이 가장 많다. 이를 제외하면 2015년 현재 1위는 공학(32명·16.2%)이었고 2위 사회과학(31명·15.7%), 3위 교육학(23명·11.6%)이 뒤를 이었다. 2005년에는 196곳 중 총장 공석인 1곳을 제외한 나머지 195곳 중 1위 사회과학(28명·14.4%), 2위 경영·경제학(23명·11.8%), 3위 공학(19명·9.7%)이었다. 공학 전공이 9.7%에서 16.2%로 6.5%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이는 최근 대학들이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산업체와 공동연구를 벌이거나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전수하는 등의 산학협력을 추진하는 데 공학 전공 총장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공학 전공 총장은 산학협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학 전공 총장이 취임한 이후 산학협력단 수익이 3배 가까이로 늘었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으로 대졸자 취업률을 높이라는 요구가 거세진 것도 공학 전공 총장이 많아진 이유로 풀이된다. 취업률이 높은 공학계열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하려는 대학의 경우에는 공학 전공 총장이 적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공학 전공 총장은 인문계 출신에 비해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 학과 통폐합이나 신설, 신규 프로젝트 실행 등에 거침이 없다”고 말했다.

공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을 전공한 총장도 10년 새 8명(4.1%)에서 14명(7.1%)으로 늘었다. 반면 농·축산학, 인문학, 법학을 전공한 총장은 10년 새 비율이 2%포인트 이상 떨어지면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총장보다도 적어졌다.

○ 최연소, 최장수 총장 모두 설립자 가족

총장들의 평균 나이는 62세로 10년 전 60세였던 것에 비해 다소 늘었다. 10년째 총장이 바뀌지 않는 대학들이 있어 평균 나이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0년 전과 같은 총장이 재임하고 있는 대학은 23곳이었다. 장수 총장 중 대부분은 법인 설립자이거나 가족 등 관계자인 경우다.

가장 젊은 그룹인 40대 총장은 전성용 경동대 총장(44), 김범중 극동대 총장(46), 손석민 서원대 총장(48) 등 3명이었다. 초임 교수와 비슷한 나이인 이 총장들의 공통점은 ‘든든한’ 아버지가 있다는 것. 전 총장은 이 대학 설립자 전재욱 박사의 아들이며 손 총장은 손용기 서원학원 이사장의 아들이다. 김 총장은 헌법재판소 소장을 지낸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의 아들이다.

최고령 그룹인 80대 총장은 김희수 건양대 총장(87), 김병옥 신한대 총장(84·여), 조기흥 평택대 총장(83), 김문기 상지대 총장(83), 이길여 가천대 총장(83·여), 최영철 서경대 총장(80) 등 6명이다. 이 6명 가운데 5명은 대학 설립자이거나 설립자 가족인 이른바 ‘오너 총장’. 최 총장은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 노동부 장관, 4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2008년부터 이 대학 총장을 맡고 있다.

○ 관(官) 출신 총장이 10% 차지

정부 고위 관료 출신 총장은 19명으로 약 10%를 차지했다. 10년 전에도 20명으로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을 관리 감독하는 부처인 교육부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았다.

관료 출신 총장이 있는 대학들을 살펴보면 각 대학의 특성에 관련이 있는 부처 출신 관료가 총장이 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대구외국어대는 전직 해외 대사관 대사를, 한국교통대는 행정안전부 차관이자 대한지적공사 사장 출신을, 한국산업기술대는 산업자원부 차관 출신을 총장으로 선임했다. 교육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된 바 있는 가톨릭관동대, 우석대, 초당대에는 교육부 차관 출신을 총장으로 선임했다. 교육부 승인을 받아 전문대에서 4년제 대학으로 탈바꿈한 동명대, 송원대도 교육부 관료들이 총장이 됐다.

대학가에서는 관료 출신 총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덕성여대는 2013년 해양수산부 차관 출신으로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지낸 홍승용 총장을 선임했지만 이듬해 교육부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홍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관료 출신을 선임하는 이유는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데, 이런 기대를 충족시킨 총장은 절반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특성과 비전에 맞는 총장이 선임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대학마다 무게중심을 학문, 교육, 취업 등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총장을 선임해야 한다”며 “국내 대학이 모두 효율성만 강조하고 있지만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대학을 경영할 수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상아탑=유리천장’ 여전… 女총장 수 10년전과 같아 ▼

총 14명중 10명은 법인 오너 가족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대학에서는 유독 변화가 더디다. 2015년 현재 국내 4년제 대학 202곳 가운데 여성 총장은 14명(7%)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05년에도 14명이었는데 변화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학 설립자 가족이거나 여대 총장인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여성 총장은 지난달 취임한 최순자 인하대 총장이 유일하다. 여성 총장 14명 중 10명이 법인 설립자이거나 설립자의 부인, 딸, 며느리 등 가족이었다. 또 전통적으로 여성이 총장을 맡는 여대 총장이 5명이었다. 일반적으로 여교수가 총장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여성 총장이 드문 이유는 1차적으로는 총장이 될 만한 연령대의 여교수가 적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의 여교수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21.4%에 달하지만 55세 이상 교수 가운데 여성 비율은 14%로 떨어진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이공계에는 특히 경력이 많은 여교수가 적은데, 대학마다 이공계열 총장이 늘어나는 추세도 여성들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장 선출 제도가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대부분 대학들은 직선제 또는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간선제로 총장을 뽑고 있는데, 구성원 대다수가 남성인 대학사회에서 여성이 정치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의 여교수는 “여교수에게는 보직교수 기회조차 드물다. 어렵게 총장 후보로 나오더라도 동료 교수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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