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광복절… 2835위 모신 순국선열 위패관 씁쓸한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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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금 2013년부터 끊겨… 버려진 탁자 ‘헌화대’로 사용
후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만든,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위패…
큰뜻 알리려 4월부터 일반공개, 남은건 빚… “선열들 뵐 낯이 없다”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4월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 있는 순국선열 현충사를 17년 만에 일반에 개방했다. 위패관에 있는 추모 헌화대는 김시명 회장이 집에서 쓰던 책상과 버려진 탁자를 고쳐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제공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는 4월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 있는 순국선열 현충사를 17년 만에 일반에 개방했다. 위패관에 있는 추모 헌화대는 김시명 회장이 집에서 쓰던 책상과 버려진 탁자를 고쳐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제공
“일본은 아직도 전범들이 득실거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어쩐다 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을 위해 해준다는 게 뭡니까. 부끄러워서 조상들 앞에서 얼굴을 못 들겠어요.”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순국선열 현충사 위패관에서 만난 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김시명 회장(68·사진)은 가슴속 응어리를 쏟아냈다. 8월이면 잠시나마 ‘순국선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뿌듯할 법도 하지만 위패를 둘러보는 김 회장의 얼굴은 착잡해 보였다.

현충사는 순국선열 위패 2835위를 모시고 있다.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같은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위패도 모두 이곳에 있다. 원래 현충사는 독립관이라는 이름으로 1997년 지어졌지만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해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 17년 만인 4월 김 회장이 취임하면서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름도 독립관에서 현충사로 바꿔 달았다. 개방한 지 100일 만에 5000명이 넘는 참배객이 다녀갔다.

“사람들이 순국선열 위패가 여기 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내 돈을 들여서라도 개방하자고 마음먹었지요. 그때는 그게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가 현충사를 찾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이곳에 모셔진 증조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1919년 3월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만세운동을 이끈 김필락 선생(1873∼1919)이 증조부다. 정성스레 위패를 닦고 증조부가 앞에 있는 듯 자손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오히려 마음은 더 무겁다고 했다. 사실 위패관에 있는 추모 헌화대 두 개 중 하나는 김 회장이 집에서 쓰던 책상이다. 다른 하나는 청계천에 버려진 탁자를 고쳐 쓰고 있다. 위패도 후손들이 조금씩 모아서 만들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6000만 원을 지원했지만 지난해부터 예산이 부족하다며 이마저 끊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업이나 개인 기부도 찾아볼 수 없다. 수입이라고 해봐야 1년에 월간지를 만들어 버는 3000만 원이 전부다. 직원들도 거의 교통비만 받고 자원봉사하는 수준이다. 남은 건 3000만 원이 넘는 빚뿐이다. 그의 바람은 단순하다.

“조상들 팔아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게 아니에요. 순국선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면 좋겠어요.”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서정길 인턴기자 연세대 법학과 4학년
#광복절#순국선열#위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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