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비리, 나 아니라도 누군가 해먹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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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식 사건’ 계기 前서울시의원이 밝힌 지방의회 도덕불감증
도시개발-인허가 등 이권사업마다 지역유지-공무원 사이 중개인 역할
국회의원 대신 해결사 노릇 하기도

2008년 8월 서울시의회는 일명 ‘돈봉투 사건’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김귀환 전 서울시의회 의장(당시 한나라당 소속)이 동료 시의원 28명에게 3400만 원의 돈봉투를 뿌린 사실이 드러난 것. 28명은 당시 서울시의원 106명 가운데 26.4%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김명수 서울시의회 의장(당시 민주당 소속)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신반포 아파트단지의 재건축과 관련해 철거업체로부터 1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였다. 서울시 재건축 심의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였다.

1991년 부활 이후 지방의회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큰 서울시의회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가 줄을 잇는다. 이번 김형식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비리의 배경에는 대부분 도시개발을 둘러싼 이권이 걸려 있다. 김 의원 사건 역시 피해자 소유 땅의 용도변경 청탁이 있었다는 것이 경찰의 조사 결과다.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은 누구의 ‘줄’이 가장 센지에 달려 있다. 자연스럽게 ‘로비스트’인 시의원에게 로비가 집중되고 여기에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해 먹는다’란 도덕 불감증이 결합되면서 바로 비리가 싹튼다.”

이형석 전 서울시의원(52)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의원 비리의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6·4지방선거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앞서 그는 현직이었던 올 5월 자신의 의정경험을 바탕으로 지방의원의 비리근절 방안을 보고서로 만들었다. 일종의 자기반성인 셈이다.

○ “시의원은 국회의원의 심부름꾼”

이 전 의원은 시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말’을 들어야 하는 풍토를 시의회 부패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려면 ‘심부름꾼’ 역할을 잘해야 한다. 시의회에 찾아가서 (국회의원이) 시킨 일은 무엇이든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의원이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국회의원 사모님이 ‘다음에 또 나오려 하느냐’는 전화를 건다는 농담도 있다”며 “그만큼 공천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선거 하다보면 자연히 빚 늘어… 지역유지 찾아 돈 빌리며 유착 ▼

이권 개입을 노리는 지역 유지들은 이 틈을 노린다. 우선 국회의원과 접촉한 후 국회의원을 통해 소개받은 시의원을 만나면 이후 ‘해결사’ 역할은 시의원이 맡는다. 이 전 의원은 “결국 지역개발, 인허가 등 지방행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부조리에서 의원은 ‘중개인’이고, 결정권한은 ‘공무원’에게 있고, 청탁은 ‘이해당사자’가 한다”고 설명했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차용증’의 유혹


일단 지역 유지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 쉽게 끊을 수 없다. 바로 선거 비용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선거를 하다보면 빚이 늘게 마련이다. 시의원 연봉은 6250만 원(서울시의 경우)인데 공식 선거 비용만 5000만 원 이상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아니라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의원들은 알고 지내던 지역 유지를 찾게 되고 그들만이 기억하는 ‘차용증’을 작성하게 된다. 김 의원 살인교사 사건에서도 피해자와의 돈거래 내용이 적힌 차용증이 확인됐다. 이 전 의원은 “차용증을 써주면서 돈을 빌려주는 측은 각종 이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 불분명한 민원과 청탁의 차이

지난해 초 서울 모 구청 공무원이 이 전 의원을 찾아왔다. 그는 “20년 넘게 고생한 공무원이 있는데 진급 좀 신경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공무원 인사를 담당하는 서울시청 행정국은 1년에 두 차례 승진 대상자를 종합평가한다. 시의원은 상임위가 달라도 감사권과 예결산 심의권을 가지고 있다. 시청과 구청 등의 ‘고위층’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셈이다.

이 전 의원은 “돈이 오가지 않고 ‘잘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지만 시의원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어렵다”며 “이런 사안을 들어주지 않으면 지역사회의 인심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여기서 돈이 오가면 비리로 확대되고 결국 돈을 준 쪽에서 더 큰 이권을 위해 협박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김형식 사건#시의원 로비#시의원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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