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품 대신 사드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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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구매대행族’ 활개… 개인 무역업자 등 해외 나갈때 ‘부업’
관세청 “탈세 행위… 명백한 불법”… 돈만 챙기는 ‘배달사고’도 잇따라

‘면세점 물건 대신 사다 드립니다.’

직장인 조현서(가명·32·여) 씨는 올해 3월 한 인터넷 카페에서 ‘내가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니 요청만 하면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다 주겠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해당 상품의 인터넷 최저가에 물건 값의 5∼10%인 ‘수고비’, 배송비를 합쳐 입금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조 씨는 평소 갖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사지 못했던 60만 원짜리 프라다 지갑의 구매를 부탁했다. 면세점의 온라인 쇼핑몰 가격(34만 원)에 수고비(3만 원), 배송비(3000원)를 합친 37만3000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그는 이후에도 해외 유명 브랜드 화장품과 선글라스를 같은 방식으로 샀다. 조 씨는 “구매 대행자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갖고 싶은 물건을 시중 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어 계속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에서 물건을 직접 주문해 싸게 구입하는 이른바 해외 직접구매(직구)가 유행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통해 국내외 면세점 상품을 구입하는 이른바 ‘면세점 구매대행’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거래가 엄밀하게는 ‘밀수’이며 탈세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면세점 구매대행은 그 자체가 관세법 위반이다. 면세점 물품은 본인이 쓰려는 것에 한해 구매가 가능하다.

면세점 구매대행을 하는 사람들은 수고비 외에 면세점 포인트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에 거래를 계속하려 한다. 최근까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면세점 구매대행을 해 온 김영준(가명·35) 씨는 “수고비를 받지 않더라도 면세점 이용 실적(포인트)이 높아져 VIP 회원이 되는 등 장점이 많다”며 “1인당 해외여행 면세 한도(400달러·약 40만 원)만 지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관세청은 면세점 구매대행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관세청 조사총괄부 관계자는“집중 모니터링 기간을 정해 단속을 하지만 최근에는 대행업자들이 단속을 피해 카카오톡 등 휴대전화 메신저에서 은밀히 거래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불법 거래라는 점을 악용한 일부 대행업자는 신청자의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승창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면세점 구매대행은 남보다 물건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 심리가 편법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라며 “탈세도 문제가 되지만 내수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신지현 인턴기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3학년
#면세점 구매대행#탈세#관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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