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역사 속의 황사…삼국사기에도 ‘雨土’ 10여 차례 등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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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흙비가 내리니 어인 까닭인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토(雨土·황사를 의미)’.

국립민속박물관 공식 블로그 캡처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토(雨土·황사를 의미)’. 국립민속박물관 공식 블로그 캡처
“나는 덕이 선대의 성왕만 못하고 다스림도 잘하지 못해 3월 24일에 흙비가 내리는 ‘천변’이 있었으니 어찌 까닭이 없으랴. 그 허물은 백성이나 신하에게 있지 않고 단정코 나에게 있는 것이다.”(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폭정을 일삼았던 연산군이 신하들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흙비가 내린 날이었다. 여기서 흙비란 ‘황사’를 의미한다. 요즘 사람들의 골칫덩이가 된 황사는 오래전 옛날에도 있었다. 황사는 단어만 우토(雨土), 매(매), 토우(土雨) 등으로 달리 불렸을 뿐 삼국시대에도 사람들을 괴롭혔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를 합쳐 우토 이야기가 10여 차례 등장한다.

‘비가 옷을 적시지 않고 흙이 있으니 이를 ‘매’라 부른다.’(고려사)

고려시대에는 황사에 관한 기록이 좀 더 늘어난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고려시대였던 1017년부터 1372년까지 43차례에 걸쳐 ‘우토’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황사를 비로 여겼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데 옷은 젖지 않고 앞만 뿌옇게 만드니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하늘이 노여워해 물 대신 흙을 뿌렸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는 황사가 ‘토우’로 기록돼 있다. 성종 9년에 토우가 내릴 당시 실록은 “흙비가 내린 것은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고 자격 없는 사람이 벼슬자리에 앉은 것에 대한 응징”이라며 심상치 않은 재난으로 기록했다. 황사가 심하면 신하들이 임금 보필을 제대로 못한 탓이라고 여겨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려 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삼국사기#흙비#황사#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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